소설 창작 27

주말 소설 연재 '탁란(托卵)

탁란(托卵) 1. 샌프란시스코 유니온 광장 맞은편, 프란시스 호텔 2층의 클록 바로 들어섰다. 금빛 커튼이 드리운 창가 테이블에 앉아 있는 현아를 금방 알아보았다. 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활짝 웃는 얼굴로 두 손을 내민다. ― 오랜만이야. 얼마 만이지? 반가운 나머지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들떠 있다. 현아를 가볍게 안고 등을 토닥였다. ― 칠 년 좀 넘었나 봐…. ― 벌써? 세월 참 빠르네. 샌프란시스코엔 언제 왔어? ― 어제. 발그레 달아오른 현아에게서 하얀 이가 드러나 보였다. 현아는 벌써 보드카 마티니로 두 잔째란다. 내 것으로 피나콜라다를 주문했다. ― 어떻게 지내? 사는 게 재미있어? 현아가 밝은 목소리로 묻는다. ― 바빠. 맨날…. ― 쉬는 날도 없이 일만 해? ― 일주일에 칠일…. ― 주말도..

소설 창작 2021.09.11

경사난 집안

아침부터 카톡이 요란했다. 무슨 일인가 해서 열어보았다. 플로리다에서 거주하는 한혜영 시인이 올린 글이다. ”제 시 ‘거대한 밥’ 중에서 일부 문구가 아모레 퍼시픽 화장품 홍보에 쓰였네요.” 그러면서 사진이 올라왔다. 다닥다닥 붙은 밥알이 우리라는 거 서로가 서로에게 밥이 되기도 한다는 거 동문의 축하 메시지가 이어졌다. 시끄러울 지경으로 오전 내내 축하 글이 도배해댔다. 그중에서 흥미로운 글도 있었다. “아모레 화장품 포장마다 그 싯 귀가 있겠네요. 살짝쿵, 알려줄 수 있겠어요? 그렇게 큰 회사에서 얼마 받았는지 궁금해요.” “물론 받았는데……. 손이 작아서 많이 달라고 못 했네요. 얼마면 되겠냐고 묻는 걸, 산업은행 본점에 내 시가 현수막에 걸렸을 때 받은 금액을 말했어요.” “산업은행 본점에 걸렸던..

소설 창작 2021.05.14

젊은 엄마, 늙은 엄마

91살인 이종사촌 누님은 늘 웃는 얼굴이다. 친척 중에서 가장 부자로 산다. 한번은 누님이 하도 잘 사니까 아내는 누님 어디에 그리 복이 많으냐고 물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더니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늘 웃어서 복이 떠나지 못 하나보다라고 말해 준 적도 있다. 나이가 많을 뿐 건강해서 안 돌아다니는 데가 없다. 집에 붙어있는 시간보다 나다니는 시간이 더 많다. 카톡도 잘해서 나보다 더 긴 글을 보내오곤 한다. 엊그제가 어버이날이어서 떠다니는 글 한 편을 누님에게 보냈다. 가장 받고 싶은 상 부안 우덕 초등학교 6학년 1반 이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짜증 섞인 투정에도 어김없이 차려지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그런 상 하루에 세 번이나 받을 수 있는 상 아침상, 점심상, 저녁상 받아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안..

소설 창작 2021.05.12

수타 손 짜장면 헷갈리는 세상

운동할 때 입을 가벼운 바람 잠바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옷장을 들여다봐도 입을 만한 게 없다. 아무거나 입어도 상관없는 나이이기는 해도 그래도 어울리지 않게 입고 다닐 수는 없다. 값싸고 그럴듯한 잠바를 어디서 구하나 하다가 시골 장터에 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가까운 일산장이나 금촌장이면 될 것 같아 장날을 챙겨보았다. 어딘가 메모지에 적어 벽에 붙여놓은 게 생각나서 찾아보았다. 오래전에 적어놓은 핑크색 메모지에 일산장-2, 7, 문산장-5, 10, 금촌장-1, 6, 이라고 적혀 있다. 오늘이 5일이어서 어린이날이라고 쉬는 데가 많기는 해도 설마 장날까지 쉬겠나 하는 생각에 문산장을 찾아갔다. 전철만 타면 문산도 금방이다. 시장을 향해 걷다 보면 참기름 냄새가 코를 찌르는 참기름집이 있어야 하는데 오늘은 ..

소설 창작 2021.05.10

노숙자를 생각하는 하루

일요일 정오쯤의 인사동 거리는 한산했다. 봄이라고는 해도 쌀쌀해서 두꺼운 외투를 벗지 못하고 움츠리고 다녔다. 종로에서 인사동으로 들어서는데 왼편에 싸구려 국숫집이 있어서 즐겨 먹던 국숫집이 문을 닫았다. 건물을 헐어내고 새로 지을 모양이다. 오전에 인사동으로 걸어 들어가 본 지도 오래돼서 아침 인사동은 어떤지 기억에 없다. 다만 오늘 정오의 인사동 골목길은 무척 한산해 보였다. 한산하다 못해 썰렁했다. 오전이어서 그런가 해서 붕어빵을 구워 파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코로나로 외국 손님이 하나도 없어서 그렇단다. 아닌 게 아니라 몇 안 되는 사람들일망정 모두 한국인이다. 관광객은 눈을 비비고 찾아보려 해도 없었다. 드문드문 임대 사인이 붙어있는 거로 보아 장사가 안되기는 안 되는 모양이다. 한산한 길..

소설 창작 2021.05.07

윤여정과 조영남

윤여정이 오스카 조연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조영남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전 남편 조영남에 대한 복수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세기의 복수극을 글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 복수극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신문에 “윤여정 축하, 바람피운 남자에 최고의 복수”이런 기사가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김 샌 이야기는 쓰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에 접어두었다. 며칠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블로그를 쓰는 것 아니냐. 블로그는 뒷이야기를 쓰는 거지. 사실 나는 윤여정이 나오는 영화를 본 적도 없고 연속극도 보지 않았다. 심지어 미나리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윤여정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윤여정보다는 조영남의 노래를 좋아했고 조영남에게 관심을 두다 보니 윤..

소설 창작 2021.04.30

코로나 자가 격리 13일째

어제 오후에 메시지가 왔다. 격리 해제 전 검사시행 안내다. 오늘 일산동구 보건소에 가서 격리 해제 검사를 받으란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말고 자기 차를 타고 가던지 걸어서 가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여권을 지참하고 비 내리는 거리를 비실비실 걸어갔다. 보건소 건물로 들어가는 정문은 걸어 잠겼다. 코로나 환자들이 드나들까 봐 당도리를 해 놓은 것이다. 주차장에 설치한 검사소에는 지난번 검사받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내 앞에 서 있는 젊은이는 집에 조카 아이가 코로나에 걸려왔단다. 접촉은 하지 않았으나 회사에 출근했더니 회사에서 코로나 검사받고 오라고 해서 왔단다. 각기 사람마다 사정이 있어서 온 사람들이다. 지난번처럼 비닐장갑 끼고 세정제로 손 씻고 서류 작성해 내고 2번 검사실 앞에 ..

소설 창작 2021.04.26

자가 격리 4일째

휴대전화로 오는 자가 검역 진단 메시지는 하루에 두 번 오는 게 아니라 수시로 온다. 틈만 나면 열어보는 데 불과 얼마 전에 보냈는데 또 왔다. 하루에 서너 번은 보내는 것 같다. 오후에 고양시 중독관리통합 지원센터에서 메시지가 왔다. 집에만 박혀 지내느라고 우울증에 걸릴까 봐 염려해 주는 것이다. 친절하고 고맙기도 하다. 어느 선진국이 이처럼 자가 격리자를 돌보아 준단 말인가? 한국은 선진국이 다 됐고 국민의식 역시 향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후 3시 15분 전화벨이 찌지찌지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낸다. 처음 듣는 소리여서 불안하고 겁도 난다. 코로나 검역소에서 걸려오는 전화다. 액정화면에 대고 나이키 로고를 그렸더니 붉은 글씨로 위치추적 중이라면서 아래 빨간 버튼을 눌러달란다. 급하게 눌렀더니..

소설 창작 2021.04.23

자가 격리 3일째

오늘도 여전히 자가검역 진단은 오전 오후 두 번 연락이 왔었고 어김없이 오후 3시경에는 자가격리 확인 전화가 걸려왔다. 감시받고 있다고 해서 기분 나쁠 것도 없다. 오후에 문자 메시지가 왔다. 택배 물건을 문 앞에 놓고 간단다. 택배원도 코로나 보균자인지도 모르는 사람과는 대면도 하기 싫다는 식이다. 놓고 간다고 문자를 보낼 게 아니라 돌벨이라도 눌러주고 가면 어디 덧나나? 문을 열고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커다란 박스가 놓여있다. 집어 들으려 했으나 무거워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가 들었기에 이리 무거운가? 끙끙대면서 질질 끌고 집안에 들여놓았다. 어디서 왔나 보낸 사람의 주소를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귀신이 보냈을 리는 없고. 보일까 말까 하는 작은 글씨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고양시에서 보내..

소설 창작 2021.04.21

자가 격리 2일째

14층에서 내려다보면 일산 코스트코가 보인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다. 보나 마나 입장인들이 연락처를 적어놓고 들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주차장을 빙 둘러심은 벚나무에 벚꽃이 만발하다. 면사포를 쓴 것처럼 하얗더니 주말을 지나면서 비 한번 맞고 나서 꽃은 다 떨어지고 아직 잎은 나올 생각을 안 한다. 봄은 코로나와는 상관없이 다가왔고, 봄소식을 전하면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봄을 좋아한다. 봄이 좋은 까닭은 두꺼운 외투를 벗겨 마음을 가볍게 해 주기 때문이다. 코로나도 외투처럼 벗어 던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 와 보는 한국의 인상은 한국인들은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이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마스크도 빈틈이 없어서 입김이 새 나가거나 틈새로 공..

소설 창작 2021.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