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버지날 선물

샌프란시스코 메아리 2021. 6. 24. 02:24

코로나 팬데믹은 어머니날, 아버지날 같은 날도 건너뛰고 말았다.

온 세상이 문을 닫았는데 그까짓 자질구레한 날이 대수더냐.

올해는 조금 달랐다.

아버지날이라고 해서 장인, 장모님 산소를 찾아갔다.

여느 해 같았으면 막내딸내도 같이 갔겠지만, 올해는 좀 달랐다.

막내딸은 아이들 데리고 휴가 여행을 떠났다.

미안해서 그랬겠지만, 여행을 떠나면서도 어디로 가는지 말하지 않고 알려 주지도 않았다.

 

작년에는 아들, 딸들은 집에서 근무했고, 손자 아이들은 학교에도 가지 못하던 때라

우리 부부만 다녀왔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날이라고 해도 공원묘지가 텅 비어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보통 어머니날에 많이 오고, 아버지날에는 별로 오는 사람이 없는 건데 올해는

아버지날임에도 불구하고 성묘객이 많았다.

날씨도 좋았고, 마스크도 해방되었겠다, 이때다 싶어 몰려온 것 같았다.

 

아버지날 점심은 아들네 집에서 먹었다.

현미밥에 카레를 얹어준다. 아들네 집 풍습 중의 하나는 현미밥을 먹는다는 거다.

손자가 둘인데 1012살이다.

손자들도 말을 잘 들어서 애들도 현미밥을 즐겨 먹는다.

아들 내 손주들은 말을 잘 듣는데 외손주는 말을 안 듣는다.

형제들끼리도 말 안 듣는 외손주는 따돌리는 게 눈에 보인다.

아이들은 뒷마당에서 따로 먹고 어른들은 안에서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이벤트가 벌어졌다.

아들에게서 삼성 개랙시 A42 5G 새 전화기를 선물로 받았다.

나는 전화도 별로 쓰지 않는데. 내게는 과분한 선물이다.

피뜩, 내가 한국에 다녀와서 아내와 누님에게 한 말이 아들 귀에 들어갔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한국에서 동생을 만났더니 딸이 새 전화기를 사 줘서 바꿨다며 자랑한다.

, 효녀 두었구나라고 말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아내와 누님에게 해 주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듣던 누님이 한마디 한다.

효녀는 무슨 효녀, 애 셋을 맨 날 봐주는 부모에게 그것도 못 해줘?”

누님의 말을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다.

 

아들이 내게만 새 휴대폰을 선물하는 게 아니라 아내와 혼자 사는 누님에게도 선물했다.

뭐 아들네 아이들을 봐준 것도 아닌데, 과분한 선물을 주다니.

아내가 며느리에게 돈 많이 썼겠다며 걱정인지, 칭찬인지 빈말이나마 건넸다.

며느리는 둘이서 벌기 때문에 괜찮단다.

둘이 번다고 다 괜찮은 것도 아니다. 마음이 있어야 하는 거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누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들이 누님에게 삼성 전화기 선물하더라고 자랑삼아 말했다.

노인도 자랑하고 싶고, 노인도 비싼 선물 받으면 기쁘다.

즐거운 일이라곤 별로 없는 노인에게 선물도 좋지만, 기쁨까지 덤으로 받는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는가.

아버지날이 일 년에 두 번 있었으면 좋겠다.

늙어도 욕심은 못 말려서 말 타면 종두고 싶다는 속담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