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 잠시도 못 참고 콕 꼬꾸라지더먼.
먼동이 트기에 밖으로 나갔다.
이일 저일 바쁘지만, 이 나이에 건강보다 더 소중한 게 있다더냐.
하루하루가 더운 날이고, 더운 날 중에서 머리가 가장 맑을 때가 아침이지만
그 귀한 아침 시간을 걷는 데 쓰기로 했다.
조금이나마 더위를 피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대로변 옆을 따라가면서 자투리 땅을 공원화해서 숲길이라면 숲길일 수도 있고,
아니라면 아닐 수도 있는 어설픈 숲길로 들어섰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이 걷는다.
전에는 이 숲길을 혼자서 걸었는데 코로나 유행병 때문에 걷는 사람이 많아졌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나라고 벗을 수도 없다.
숲길이 주는 혜택으로 피톤치드라도 마셔볼까 했는데 마스크를 벗어서는 안 된다니
마스크가 피톤치드 흡입을 막아대는 바람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숲길을 부대끼며 걷느니, 그러면서 피톤치드도 마시지 못하느니 차라리 다음부터는
인도교를 걷는 게 낫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드문드문 아침 햇살이 피부에 와닿으면 따갑게 느껴진다.
캘리포니아의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과는 확연히 다르다. 계절이 여름이어서 그럴 것이다.
따가운 여름 햇볕을 피해 그늘을 찾아 들어가서 걷는 한국과 일부러 햇볕을 쏘이려고
햇볕을 찾아가며 걷는 캘리포니아를 견주어 보지 않을 수 없다.
숲속은 매미들의 합창으로 시끄러웠다.
시도 때도 없이 새벽부터 매미가 운다. 내 고장 8월은 매미 우는 소리뿐이던가?
매미들끼리도 소리는 지른다만 누가 누구를 부르는 건지 구분이 안 될 것이다.
이건 구애의 세레나데가 아니라 도떼기시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미 홍수 시대를 맞이해서 소리 공해가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2년 전보다 더 많아진 것 같다. 매년 개체 수가 늘어나는 모양이다.
매미 소리가 아름답지 못하고 죽도 못 얻어먹은 매미처럼 맥 빠진 목소리로 겨우 운다.
타협이 다 풀린 괘종시계처럼 시름시름 죽어간다.
시끄럽게 제각각 울어대는 매미 소리에 귀가 아프다.
옛날 참외 원두막에 앉아서 듣던 경쾌한 매미 우는 소리는 어디로 갔는지.
예전에는 매미도 귀했다. 자동차가 귀해서 가끔 지나가던 것처럼.
귀하기만 한 게 아니라 매미들이 똑똑해서 미루나무 꼭대기에서 울었다.
잠자리는 잡기 쉬워도 매미는 잡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말매미는 덩치도 크고 소리도 우람했다.
지금처럼 매미 우는 소리 사태가 난 게 아니라, 매미가 귀해서 가끔 들려오곤 했다.
돌아오는 길에 풀꽃 하나 꺾어 들고 걸었다.
풀꽃은 걷는 고새를 못 참아서 폭삭 까부라져 고개를 못 든다.
소주잔에 물을 담아 꽂아 놓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바짝 쳐든다.
풀꽃도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쳐들었을 때 아름다워 보인다.
하룻밤 자고 났더니 소주잔 물이 반이나 없어졌다.
풀꽃도 먹 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시 채워 놓았다.
살아 있는 동안은 자신 있게 살아라,
그것만이 아름다운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