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온 세상이 빨간 아침

샌프란시스코 메아리 2020. 9. 10. 09:23

9월 9일 오전 10시 30분 오클랜드 시내
오클랜드 주택가

나는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고 깜짝 놀랐다.

세상이 빨개진 거다. 온 세상이 붉게 물들어 있다. 마치 노을 진 저녁처럼.

이게 웬일인가? 내 눈이 잘못됐나 의심했다.

컴퓨터 화면을 보느라고 LED 불빛에 오래도록 노출돼서 눈이 고장 났나 했다.

나는 소리치며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하늘이 잘못된 거냐? 내 눈이 잘못된 거냐?

 

어제도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어서 해가 하늘에 떠있기는 해도 어렴풋이 떠 있을 뿐

온 세상이 불그레했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더욱 붉어졌다. 붉다 못해 빨개졌다.

하늘이 온통 짙은 연기로 덮여 있으면서 불그레하니 온 세상이 붉게 물든 거다.

세상만 붉은 게 아니라 컴컴하기는 왜 그리 컴컴한지. 어두침침하다.

세상에 아침이 노을처럼 빨간 아침은 처음 보았고, 어두침침한 아침도 처음 맞이한다.

 

뉴스를 틀었다.

우리 지역은 좀 낳은 편이란다. 조금 멀리 떨어진 지역은 새빨갛단다.

TV 화면에 보여주는 데 정말 빨갛다.

아침 9시인데도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들은 너나없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린다.

이웃 동네 댄빌은 밤사이에 하늘에서 흰 재가 이슬 내리듯 내려와 세워놓은 차에 하얗게

덮였다.

하늘에서 재가 내리다니…….

멀리 떨어진 남쪽 프레즈노 시에라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은 계속 확대되어 빅 크리크라는

작은 마을을 휩쓸며 쉐버 레이크 휴양지를 따라 확대되고 있단다.

프레즈노카운티에 따르면 주민 3만명 이상이 화재로 대피했다.

시에라국립산림에서는 산불로 고립된 사람 385명과 동물 27마리가 헬리콥터로 구조됐다.

멘도시노 카운티에서도 산불은 번져간다. 산불은 캘리포니아 전 지역 여기저기서 불타고

있다.

계속되는 산불 연기로 대기 상태가 악화하면서 샌프란시스코 지역은 대기오염 경보를

10일까지 연장했다.

산불이 며칠째 계속되더니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 캘리포니아 하늘에서 머물러 있다.

바람마저 없어서 연기는 멀리 가지 못하고 캘리포니아 하늘을 떠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하늘까지 덮어버린 연기는 해를 가리고, 노을로 물들이고, 붉은 세상을

연출했다.

 

해가 없으니 날씨마저 칙칙하고, 컴컴하고, 싸늘하다.

대낮인데도 집 안에서는 불을 켜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아내가 텃밭에 나가보고 상춧잎에 흰 재가 내려앉았단다.

아닌 게 아니라 호박잎이 붉게 보이더라 했지…….

세상이 빨갛게 물드는 건 처음 보았다.

흰 재가 하늘에서 내리는 것도 처음 보았다.

동네 한 바퀴 걸으면서 보았는데 집집마다 아웃 도어 조명등, 엘이디 주택 외등이 켜져 있다.

요새는 라이트 센서로 되어 있어서 어두워지면 자동으로 켜지기 때문에 대낮인데도

컴컴하니까 센서가 밤이라고 잘못 알고 켜고 보는 거다.

관심 없이 보던 것도 다시 자세히 보게 된다.

길가에 세워둔 차들이 흰 재를 뒤집어쓰고 있다.

밤에 흰 재 눈이 내린 것이다.

예기치 못한 재앙은 도처에 숨어 있다가 틈새만 보이면 비집고 나와 인간을 괴롭힌다.

코로나19가 그렇고, 산불이 그렇고 또 다음은 무어냐? 어떠면 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