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열 시쯤이면 동네 한 바퀴를 돌아온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늘 그래 왔다.
전에는 혼자 걸었는데 지금은 아내와 함께 걷는다.
코로나 사태 이후 짐(Gym)이 문을 닫는 바람에 아내는 짐으로 출근하지 못하게 되면서
내게 합류했다.
해가 오늘 갑자기 뜬 것도 아닌데 아침 햇살이 비타민 D 형성에 좋다는 얻어들은 소리가
떠올라 반갑고 고귀해 보인다.
늘 느끼는 거지만 아침 공기는 신선하고 햇살이 피부에 와 닿으면 상쾌하다.
전에는 동네 한 바퀴를 돌아오도록 스쳐 지나가는 사람그림자도 보지 못했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 걷는 사람이 많아졌다.
여러 얼굴을 대하면서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만나면 반갑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서로 피한다.
피하면서도 내가 당신이 싫어서가 아니라는 표시로 “하이”하거나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참 이상한 풍습이 다 생겼다.
짧다면 짧은 30분 걷기 운동 사이에 평지도 있고 평지를 지나면 야트막한 언덕도 있어서
숨을 가쁘게도 한다. 언덕을 지나면 작은 공원이 있어서 공원을 반 바퀴 돌아 나온다.
약간의 언덕과 내리막길을 두어 번 지나고 나면 아침 운동으로는 충분할 것 같다.
걷다 보면 이런저런 집들이 즐비한데 그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집은 야트막한 언덕을
조금 오르다 보면 집 앞 정원을 작은 규모의 포도밭으로 가꿔놓은 집이다.
보통 집 앞마당 보다는 조금 넓기는 해도 앞마당은 앞마당에 불과한데,
이 집은 특이하게도 마당을 정원으로 가꾸지 않고 포도 농장으로 개발했다.
계절 변화를 가장 잘 나타내는 농작물의 변신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포도 농사로 와인을 만든다는 것을 그 집에 세워놓은 드럼만한 포도주 참나무통을 보면 알 수 있다.
포도 넝쿨에 달린 포도가 청포도인 것으로 보아 백포도주를 만들 것이다.
포도 농장에 말뚝을 세우고 넓은 그물망을 쳐놓아 울타리를 대신 하는 것으로 보아 때로는
무단 침입자가 들이닥쳐 포도를 다 따먹는 모양이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은 야생 사슴이 내 눈에도 띄었다.
뿔이 아직 덜 자란 걸 보면 어린 사슴 같다.
어떤 때는 어미 노루가 새끼를 데리고 다닌다. 어린 노루는 겁이 많아서 얼른 숨어버린다.
사슴이나 노루는 귀가 어른 가죽 장갑만큼 크다.
커다란 귀를 거의 360도 돌리는 재주가 있다. 사슴이나 노루가 가지고 있는 무기는 오로지
커다란 귀뿐이다.
땅에 떨어진 열매를 주워 먹을 때면 귀가 등 뒤에서 나는 소리를 듣기 위하여 안테나 돌리듯 뒤쪽으로
바짝 돌려 세운다. 작은 소리일지언정 빨리 캐치하기 위해 커다란 귀를 안테나처럼 이리저리 돌려댄다.
소리를 듣고 먼저 알아차려야 잽싸게 도망칠 수 있기 때문에 귀가 유난히 크고 발달해 있다.
멀리서 바스락 대는 소리만 나도 고개를 번쩍 들고 살펴본다. 도망가야 할 것인지 그냥 남아 있어도 되는지
판단하려는 눈빛이 날카롭다.
자신을 해칠 사람이 아니라는 것으로 판단되면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평화로이 먹이를 찾는다.
노루가 산에서 먹이를 구하지 않고 사람 사는 동네로 내려오는 까닭은 먹이 구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화초로 심어놓은 식물은 맛있는 먹잇감이 되고도 남으리라.
한번은 어떻게 쑤시고 들어왔는지 우리 집 뒷마당에 들어와 선인장을 비롯한 귀한 화초를 다 먹어치웠다.
노루가 뭘 알고 그랬겠느냐 만은 그래도 노루가 야속했다.
다시 포노농장 집으로 돌아가서 포도 잎이 가을을 타서 노랗게 변해간다.
하루가 다르게 변색되면서 녹색일 때보다 더 아름답게 보인다.
지금쯤 포도 잎을 사람으로 치면 환갑쯤일 것이다.
녹색 푸르렀을 때보다 더 아름다운 까닭은 이별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노란색에 이별을 더하면 서글퍼진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했는데 쓸쓸하고 서글픈 노년의 남자를 두고 일컫는 말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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