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39

막내딸은 아이가 셋이다

막내딸은 아이가 셋이다. 딸 둘에 아들이 하나인데 6살, 4살, 2살이다 딸 둘을 낳았기에 이제 그만 낳나보다 했더니 덜컹 아들을 낳았다. 요새 세상에 아이 셋 낳는 집도 그리 흔치 않다. 하나나 둘 정도인데 막내딸은 셋이나 낳다니 조금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기도 하고. 하긴 나도 셋이나 길렀으니…… 막내딸은 고만고만한 아이가 셋이나 되는 주제에 냉장고도 없이 산다. 지금 같은 세상에 냉장고 없이 어떻게 사느냐 하겠지만 내 딸은 그렇게 산다. 몇 해 전에 부자 동네에 새집을 사서 이사 가면서 냉장고도 새것으로 들여놓았다. 삼성이나 LG로 사라고 했는데도 고집을 부리고 미국산 웨스팅하우스를 사더니 2년 만에 고장이 났다. 수리하는 사람을 불렀는데 부품을 주문해야 한단다. 2달인가를 기다려서 부품이 왔는데..

사랑 2022.06.25

행복하기만 한 사람들

목요일 오전에 바이올린 연주회가 있다고 해서 초등학교 5학년인 손주 학교에 갔다.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어린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럽게 떠들면서 놀던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갈 시간이 되자 운동장에 각 학년 반마다 일렬로 줄지어 앉았다. 앉기만 하는 게 아니라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누가 조용히 하라고 시키나 해서 둘러보았다. 선생님이나 누구도 조용히 하라고 시키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들이 알아서 줄을 따라 앉아 조용히 기다린다. 한 줄씩 일어나 일렬로 반으로 들어갔다. 초등학교 1학년에서 4학년까지의 학생들인데 말을 잘 듣는 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 연주회는 운동장 한쪽에서 벌어졌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연주 학생들이 모여서 음악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연주하는데 연주하는 학생들..

사랑 2022.05.21

말 잘 듣는 아이, 말 안 듣는 아이

아침에 학교에 간 손자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학교에 왔는데요. 바이오린 레슨 노트를 빼먹고 왔어요. 같다주세요.” 나는 깜짝 놀랐다. 무슨 소리냐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젯밤, 바이오린 레슨 노트를 스탠드에 끼워놓고 연습하다가 그냥 자버렸단다. 아침에 바이오린만 들고 왔으니 오후 특활 시간에 가면 레슨 노트가 없어서 안 된다는 것이다. ‘알았다 내가 갖다 주마’ 하고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점심도 가져오란다. 부랴부랴 손주네 집으로 달려갔다. 콩나물이 그려진 뮤직 노트가 악보대 위에 그대로 있다. 악보 노트를 접어들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딸이 싸놓은 점심이 있다. 녹색 점심 빽에 샌드위치와 펩시콜라 한 캔이 들어있고 간식 그래놀라 바도 있다. 학교에서 사 먹는 점심은 뭐가 모자라는지 딸은 손..

사랑 2022.05.10

아내의 행복

사랑치고는 엄마가 자식 사랑하는 것보다 더 고귀한 사랑이 있을까?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동물도 그렇다. 어떠면 식물도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내는 안 먹겠다는 아이를 한 입이라도 더 먹이려고 쫓아다니면서 숟갈로 떠서 입에 넣어주곤 했다. 그러지 말라고 말려도 듣지 않았다. 옛날 가난했던 시절에는 먹을 게 없어서 모두 굶었다. 배가 고파서 먹을 게 없나 하고 두리번대는 자식을 볼 때마다 엄마의 가슴이 미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먹을 게 많아서 어떻게 해서라도 정크푸드는 먹이지 않으려고 고민하는 시대이다. 지금은 아이가 너무 먹어서 걱정이지 안 먹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내는 멀리 산라몬까지 달려간다. 산라몬은 집에서 40마일로 30분이나 달려가야 하는 거리다. 가는데 30..

사랑 2022.03.31

가장 평범한 삶이 가장 좋은 사주

캘리포니아는 봄날처럼 화사하고 따스하다. 불과 엊그제까지만 해도 춥다고 움츠리고 다녔는데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반팔 셔츠로 갈아입었다. 봄볕은 따스하고 부드럽다. 햇볕을 쪼이면 기분이 좋다. 같은 태양인데 어쩌면 계절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지 같은 공기임에도 싸늘한 공기가 있는가 하면 신선한 공기도 있는 것과 같다.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은 유행가를 좋아하셨다. “그대 앞에만 서면 왜 나는 작아지는지……” 그분의 애창곡 19번 ‘애모’의 가사다. 여기서 그대란 예수님을 일컷는다. 주한 미국 대사를 지낸 성 김 대사의 부인 정재은 씨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아베 총리가 미국을 방문 했을 때 백악관 만찬에 초대받아 간 일이 있는데 백악관에서 만나본 아베 총리는 사람이 커 보이더라. 실제 인물보다 1,5배..

사랑 2022.02.15

오래 사는 방법

요즈음 어딜 가나 쉽게 들을 수 있는 게 백세 시대란 말이다. 과연 백세 시대는 열렸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백세 하면 김형석 교수를 예로 들어 이야기한다. 요즈음 그분은 철학 교수보다는 장수 비결의 소유자로 더 알려져 있다. 그분의 장수 비결 유튜브를 보면 여느 백세 노인들과 다를 게 없다. LA 다운타운 벙커힐에 사는 올해 108세의 모리 마코프 옹을 보자. 마코프 옹은 100세에 첫 개인전을 가졌다. 헐리웃에서 가전제품 수리점을 운영하던 시절, 틈틈이 버려진 고철들로 조각품을 만들었는데, 어느 날 한 갤러리 주인이 ‘작품’들을 보고 깜짝 놀라 전시회를 주선한 것이다. 그날 이후 마코프는 회고록 집필을 시작했고, 103세에 “계속 숨쉬기”(Keep Breathing)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사랑 2022.02.12

붕어빵 사랑

시계가 오후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책을 읽다가 어쩐지 배가 출출하다 했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14층에서 내려다보면 처음에는 차도 사람도 작게 보였는데 그것도 자꾸 보아 버릇했더니 그러려니 해 보인다. 멀리 사거리에 붕어빵 장사가 보인다. 붕어빵 장사가 영업을 하는지 안 하는지 분명치가 않았다. 눈으로 보아서는 구별이 되지 않는다. 내게는 부르셀 망원경이 있어서 꺼내 들었다. 망원경은 등산 다닐 때 가지고 다니려고 샀지만 실제로 한 번도 써먹어보지 못했다. 십 년도 더 오래된 망원경을 꺼내 들었다. 붕어빵 장사를 향해 망원경의 초점을 마췄다. 그렇다고 자세히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구루마를 쒸워놨던 포장을 걷어낸 것으로 보아 영업중인 것처럼 보였다. 나는 겨울 잠바를 찾아입었다. 며칠째 방에만 틀어박..

사랑 2021.12.16

빈 둥지

정원에 단풍나무 모종을 심어놓고 어영부영 5년이 흘렀다. 어느덧 어른 키보다 더 크게 자랐다. 12월로 접어들면서 잎이 다 떨어진 단풍나무에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는 게 더없이 쓸쓸해 보인다. 쓸쓸하다 못해 외로워 보이는 나뭇가지 꼭대기에 새 둥지가 눈에 띈다. 새가 둥지를 지은 지 오래돼서 검부러기가 바래고 낡았다. 빈 새 둥지일망정 둥지가 있었다는 걸 나는 오늘 처음 보았다. 집을 짓고 알을 낳고 부화시켜 새끼를 기르고 날아가는 동안 새가 들락거리는 낌새도 채지 못했다. 새는 보안이 FBI보다 더 철저했고 행동이 007 첩자만큼 비밀스러웠다. 단풍나무는 봄에 싹이 트고 여름에는 잎이 무성해서 나뭇가지가 보이지 않는다. 무성한 나뭇잎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도 없으려니와 새 둥지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

사랑 2021.12.04

온난화가 가져오는 지구 파괴

얼음 왕국의 제왕 북극곰이 기지개를 펴고 사냥에 나선다. 북극곰은 북극지역에서 제일 큰 육식 동물이지만 따로 영역을 정해놓고 살지는 않는다. 때로는 먹이를 찾아 혼자서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하기도 한다. 희고 긴 털 밑에서 검은 잔털의 흔적을 볼 수 있는데 빙하에 고립됐던 시베리아 불곰 중 일부가 살아남아 진화해온 것이기 때문이다. 입은 얼음을 뚫기 위해 길어졌고, 찬바람을 피하느라고 귀는 자그마해졌다. 북극곰은 2살 때 어미 곁을 떠나 평생을 혼자 살아간다. 번식기에도 짝짓기를 할 뿐 가족을 이루는 법이 없다. 곰은 냄새로 먹이를 찾는다. 북극곰이 가장 좋아하는 사냥감은 바다표범이다. 물속에서와 달리 바다표범은 얼음위로 올라오면 시력이 몹시 떨어진다. 북극곰은 바다표범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 얼음인척 ..

사랑 2021.12.02

내가 누군가에게 땅벌은 아니었나?

노동절 연휴라고 해도 은퇴 후에 집에서 노는 삶은 그날이 그날일 뿐이다. 아들네가 연휴를 맞아 캠핑 갔다가 오는 길에 들르겠다고 했다나? 아내는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고 처음 집에 오겠다는 것이니 줄잡아 1년 6개월 만이다. 무엇을 먹일까? 이것저것 메뉴를 떠올린다. 뒷마당에서 바비큐나 해 먹자는 나의 의견은 이런저런 이유로 밀려나고 말았다.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아들이 고기 굽느라고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일만 할 것이라는 엉뚱한 이유 때문이었다. 결국은 하와이안 바비큐를 사다 먹기로 했다. 하와이안 바비큐라는 그럴듯한 이름만 붙었지 그냥 바비큐 음식이다. 치킨 바비큐며, 소고기 바비큐 등 여러 바비큐가 있는데 하다못해 LA 갈비 바비큐도 있다. 이 음식점이 영..

사랑 2021.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