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창작 27

코로나 팬데믹 2019

4 LA에서 사는 막내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막내는 UCLA 간호학과 교수다. 다짜고짜 남편 이야기부터 털어놓았다. ― 어? 그거 큰일 났네. 코로나바이러스가 고령에는 치명적인데……. 우선 방을 따로 쓰고 언니는 마스크를 써야 해. 동생은 나를 걱정해서 감염되면 안 된다는 주의부터 주었다. 남편의 증세를 설명해 주고 증상이 이런데도 병원에서 입원시켜 주지 않으니 어쩌면 좋으냐고 물어보았다. ― 병원마다 입원 병동이 부족해서 그래. 산소 호흡기며 장비도 없고, 의료진도 달리고, 지금은 병원마다 다 그래. 그래서 코로나19 환자를 가능하면 집에 머물게 하는 거야. 집에서 버티다가 나면 다행이고, 죽기 전에 입원시키기도 바쁘다니까? 나는 동생의 말을 듣고 ‘뭐..

소설 창작 2022.09.06

코로나 팬데믹 2019

3 따스한 봄볕이 듬뿍 내리쬐는 뒷마당 텃밭에서 남편은 흙을 주무르며 좋아했다. 묵은 뿌리를 걷어내고 굳은 흙을 뒤집었다. 닭똥을 세 포대나 사다가 섞었다. 작년에 심었던 채소는 올해도 똑같이 심었지만, 심을 때마다 새롭다. 채소 기르는 게 취미인 남편은 유기농을 먹는다는 자부심도 강했다. 가지는 모종을 사다 심고, 호박, 상추, 시금치는 씨를 뿌렸다. 텃밭이 보기에 가지런한 게 제법 그럴듯하다. 남편은 뭘 해도 솜씨 나게 꾸미는 데는 소질이 있는 사람이다. 남편이 뒷마당에 서 있으니 평화와 질서까지 돌아온 것처럼 사람 사는 집 같다. 보름째 되는 날이었다. 남편은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갑자기 몸에서 열이 나고 기운이 없어서 일어날 수 없단다. 나는 글 쓰던 게 남아 있어서 서재에서 따로 잤..

소설 창작 2022.08.30

연재 소설 '코로나 팬데믹 2019'

제임스가 세인트 프랜시스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한다는 이야기는 언니를 통해 들어서 알고 있었다. 같이 사는 여자는 방글라데시 출신으로서 간호사라고 했다. 흑인은 아니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흑인보다 피부가 더 까맣고 반들거렸다. 피부가 까맣다 보니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앞니가 희다 못해 푸른 기가 돌았다. 언니는 같이 사는 여자가 여자친구라고 했는데, 제임스에게 직접 들어보면 결혼 신고까지 한 와이프란다. 제임스는 아이 때부터 엉뚱한 짓을 잘했다. 엉뚱하면서도 약삭빠르기로는 꿩의 병아리다. 엉뚱한 건 언니가 더했다. 언니는 어려서부터 자기 자신만 아는 이기주의자라고나 할까? 하여간에 못돼먹었다. “못돼먹었다.”라는 말은 엄마가 늘 하던 말이다. 자기 옷은 손도 못 대게 하면서 내 옷은 자기 옷처럼 입고 ..

소설 창작 2022.08.25

연재 소설 '코로나 바이러스 2019'

멀리 샌프란시스코 공항 활주로를 내려다본다. 이륙 활주로 세 곳과 착륙 활주로 두 선이 쉴 틈 없이 바쁘다. 2~3분에 한 대씩 차고 오른다. 아니, 두 대가 동시에 날아오른다. 각도를 달리한 착륙 활주로에 줄줄이 내려앉는 거대한 동체가 깃털처럼 가벼워 보인다. 차가운 아침 공기를 가르며 서울발 대한항공 비행기가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이국에서 대한항공을 보면 내 가족을 만난 듯 반갑다. 하늘색 기체가 착륙하는 내내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대한항공이 곧 고국이고, 고국은 언제나 그리운 노스탤지어다. 가고 또 가도 그립기만 한 곳…. 비행장이 한눈에 보이는 언덕진 공원 주차장에서 대한항공을 기다렸다. 차에 앉아 앞 유리를 통해 착륙 활주로에 다가서는 비행기를 하나하나 주시했다. 그토록 그리던 남편은 K..

소설 창작 2022.08.23

주말 연속 소설 '탁란' 마지막 회

9. 현아는 예전처럼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다. 거실엔 골동품이 더 많아진 것 같았고 벽에 걸려 있는 뻐꾸기시계에서 “뻐꾹! 뻐꾹!” 하며 시간을 알리는 소리도 여전히 들렸다. 뻐꾸기는 늦봄까지 짝을 찾지 못한 수컷이 처절하게 운다던데, 오늘따라 아주 슬프게 들렸다. 우려했던 것처럼 현아 엄마가 싫어하는 기색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서울은 온종일 안개가 끼었다. TV 뉴스에서는 미세먼지가 위험수위라며 외출 시에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한다. 그다음 뉴스로 25년 전에 스웨덴으로 입양 간 에바 에릭슨이란 숙녀가 친어머니를 찾았다는 뉴스를 보여 준다. 나와 비슷한 사례여서 관심이 쏠렸다. 그동안 친어머니는 딸을 애타게 찾아다녔다면서 모녀 상봉 장면을 보여 주었다. 뉴스를 보면서 어쩌면 나의 친엄마도 미치..

소설 창작 2021.10.24

주말 연속 소설 '탁란'

8. 날씨가 매우 변덕스럽다. 잔뜩 흐린 날씨에 가끔 천둥, 번개가 치곤 했다. 당장 결단이라도 날 것처럼 구름이 내려앉더니 비가 쏟아지다가 뚝 그치면서 언제 비가 왔느냐는 식으로 맑게 개었다. 결국, 현아와 현아 엄마는 철수를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스티브는 자기 아이로 치지도 않았다. 현아 엄마는 여전히 헬리콥터 맘 노릇을 톡톡히 했고, 현아는 엄마에게 치사하리만치 질질 끌려다녔다. 떠나기로 한 날을 며칠 앞두고 나는 현아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 현아는 남고 엄마 혼자 가시라고 하면 안 될까? 어렵게 현아에게 말을 걸었으나 그녀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 설혹, 헤어지더라도 우리는 전과 같이 친구야. 그녀가 듣든지, 말든지 나는 다짐하듯 현아에게 말했다. 현아와 현아 엄마는 짐을 꾸..

소설 창작 2021.10.17

주말 연속 소설 '탁란'

7. 작지만 붉은 장미 다발을 들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현아를 기다렸다. 현아는 오른손으로는 바퀴 달린 여행 가방을 끌고, 왼손으로는 네 살 먹은 아이 손을 잡고 걸어 나왔다. 마중 나온 사람들의 눈길이 내게로 집중되는 것 같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현아에게 꽃다발을 안겨주고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 아이는 철수라고 했다. 철수와 악수하고 번쩍 들어 안았다. 철수는 얼굴과 목덜미, 손등에 부스럼이 심했다. 나면서부터 아토피로 고생 중이란다. 고생도 고생 나름이지, 가려운 걸 못 긁게 하느라고 매일 전쟁이란다. 집에는 스티브와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스티브는 엄마를 처음 본다. 계면쩍은지 얼굴이 빨개지면서 몸을 비비 꼬며 할머니 뒤로 숨어버렸다. 현아가 다가가 껴안고 한참을 더듬었으나 어색함을 달래기..

소설 창작 2021.10.10

주말 연속 소설 '탁란'

6. 예나 지금이나 태양은 온 천지에 가득하다. 캘리포니아의 화창한 햇살이 차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현아와 데이트하는 기분으로 고속도로에 올라와 남쪽으로 향했다. 약속했던 대로 현아를 태우고 내가 사는 집을 보여 주러 가는 길이었다. 서니베일은 내가 부동산 중개업을 열고 칠 년째 다져온 지역이다. 실리콘밸리를 끼고 있어서 직장을 따라서 이동해 오는 인구가 많다. 당연히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으로 집이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세일즈맨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직원을 여덟 명이나 거느린 중견 중개업자로 성장했다. 마침 호황기에 접어든 부동산 경기가 호응해 준 것이 행운이기도 했지만, 중국인 부자들이 몰려와 부동산에 투자한 것도 한몫했다. 특별히 중국인 담당 세일즈맨도 따로 두고 있다. 지난 삶 속에서 ..

소설 창작 2021.10.04

주말 연속 단편소설 '탁란'

5. 희한하게도 갓난아기의 얼굴에 내 얼굴이 겹쳐 그려졌다. 아기가 나라고 느껴지면서 행복한 것도 같고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도 같았다. 내 아기만큼은 아무런 구김살 없이 자라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출산 다음 날 아침에 퇴원하라는 간호사 말에 현아 엄마는 버럭 화를 냈다. ― 세상에, 간호사라면서 산후조리도 몰라? 현아 엄마는 산모가 병원에 더 입원해 있어야 한다면서 퇴원하는 걸 원치 않았으나 병원 측은 단호했다. 산부인과 의사는 아기를 낳고 난 다음 날부터는 샤워도 하고 걸어 다니면서 운동하라고 권했다. 현아 엄마는 몸조리하지 않으면 산후 후유증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느냐면서 나를 다그쳤다. 나는 중간에서 어느 말이 맞는지 알지 못했다. 의사에게 산후조리를 문의했으나 그럴 필요 없..

소설 창작 2021.09.27

주말 연속 단편소설 '탁란(托卵)

3. 유난히도 맑은 초가을이었다. 현아의 엄마를 만나야 한다는 바람에 은근히 떨리고 초조했지만, 어차피 겪어야 하는 일이기에 현아를 따라나섰다.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인사하는 게 싫다. 사람들은 입양아라고 하면 선입견 때문에 그러는지, 별나라에서 온 사람 보듯 쳐다본다.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눈초리로 훑어보며 얕잡아보려 드는 게 싫다. 현아 엄마가 강남 구의원이라는 것과 체면을 중요시하고 난 척하는 면이 있어서 치켜세워 주든가 비위를 맞춰 주면 좋아한다는 것을 현아가 가르쳐 줘서 알았지만, 비위를 맞춰 줘야 좋아한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사람의 감정을 읽는 데 미숙하기도 했고 마음에 없는 말은 할 줄 모르기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고층 아파트들이 겹겹이 서 있는 사이로 햇살이 사선을 그..

소설 창작 2021.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