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창작 27

자가 격리 첫날

1년 6개월이나 비워뒀던 오피스텔은 컴컴하고 괴괴한 게, 마치 백제 무열왕릉을 발굴할 때처럼 사물이 흩어져 있었다. 새벽 4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수속하고 집에 오는데 4시간여 걸렸다. 아침 9시에 고양시 보건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오전에 가까운 보건소에 가서 코로나 테스트를 받으란다. 그러면서 주의사항이 따랐다. 어떻게 보건소에 갈 것인가 묻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는 안 되고, 택시를 타려면 반드시 방역 택시를 타야 한단다. 방역 택시는 많지 않아서 전화로 예약하고 오래 기다려야 차례가 온다고 했다. 결국 운동도 할 겸, 비 오는 길을 걸어서 가기로 했다. 전철로 한역이어서 걸을 만 한 거리다. 이번에는 휴대폰에 앱을 깔아준 공항 검역 요원한테서 전화가 왔다. 매일, 수시로 앱에 자가 진단 ..

소설 창작 2021.04.17

코로나 시대에 인천 공항 입국

자정에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출발하는 비행기는 대한항공뿐이었다. 코비드 19가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공항이 한산하다 못해 텅 비었다. 식당이란 식당은 다 닫았고 선물가게도 책방도 심지어 공항 로비에 진열하는 뮤지움도 걸어 잠갔다. 대한항공 기내는 더욱 한산했다. 보일 787-900 기종의 이코노미 풀러스의 좌석 수가 135석인데 겨우 15명이 타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빈 좌석이 하나도 없어야 하는 건데 오늘은 텅텅 비었다. IMF 당시에도 잠깐 손님이 없어서 좌석이 텅 빈 적이 있기는 했어도 지금처럼 일 년이 넘도록 끊임없이 빈 비행기로 날아다닌 예는 없었다. 연료비도 안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간격을 둘 필요도 없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앞으로 네 줄, 뒤로 네 줄은 완전..

소설 창작 2021.04.15

통일이 눈 앞에 보인다

김 의원은 김 비서관이 문을 열고 서 있는 그랜저 뒷문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비서관이 잽싸게 문을 닫고 자기는 앞좌석으로 들어갔다. 차 안 공기는 이미 따뜻하고 포근한 게 안방 같았다. “갑시다.” “네, 의원님 국회로 모시겠습니다.” “여보게 운전기사, 자네 성이 김 씨라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음, 그래? 비서관 자네도 김 씨 아닌가?” “그렇고말고요. 의원님도 아시면서……” 김 비서관은 김 의원을 향해 살짝 눈을 흘기면서 말했다. 김 의원은 비서관 입가의 미소가 밉지 않았다. “한반도는 말이야, 김 씨가 잡아야 해. 신라 때도 말이야 김 씨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 말이야 통일이 됐잖아. 지난번 김대중 대통령 때 말이야, 통일이 됐어야 했던 건데 말이야, 음~ ~ 아깝게 됐어. 하지만 ..

소설 창작 2020.12.30

잠실 경기장에서 벌어진 세기적인 권투 경기

처음 열리는 경기지요? 네 그렇습니다. 잠실 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리는 권투 경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전무후무한 일이지요. 역사적인 경기입니다. 출전 선수만 보더라도 추 선수, 추 선수는 백전노장이지요. 한 번도 저 본 일이 없는 선수입니다. 거기에다가 임기웅변이 좋지요. 자기가 해 놓고도 아니라고 우기는 선수지요. 상대 선수가의 잘못을 호되게 지적하면서 자기는 그와 똑 같이 하면서 페어플레이라고 우기는 선수입니다. 아! 참 뻔뻔하네요. 이 경기가 뻔뻔 경기는 아니지 않아요? 물론이지요. 뻔뻔하면 안 됩니다. 어디까지나 신사적인 스포츠 경기이니까요. 상대 선수는 어떻습니까? 상대는 윤 선수인데요. 이 선수는 곧이곧대로 하는 선수입니다. 옆을 볼 줄 몰라요. 흑이면 흑, 백이면 백이지요. 요령을 부릴..

소설 창작 2020.11.27

문학 강의를 듣고 나름대로의 생각

내가 여섯 살 때 친할머니한테서 들은 옛날이야기가 있는데 그중에서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는 ‘몽테크리스토 백작’ 이야기다. 외딴 섬 감옥에서 자루에 담겨 바다에 던져지고, 자루를 찢고 나와 복수 한다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잊히지 않는 이야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커가면서 의문이 생겼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명작 중의 하나인데 그 옛날 어떻게 할머니가 그 이야기를 알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한글도 모르던 할머니가 소설을 읽었을 리는 만무하고, 누군가에게서 들었을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재미있어서 기억했다가 손주에게 들려주었으리라. 나 역시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기억하고 있다. 이야기가 재미있어서라기 보다는 플롯이 탄..

소설 창작 2020.08.30

소녀 노숙자

단편소설: 소녀 노숙자 * 1 * 내가 오클랜드 사회복지시설에서 시간제 복지사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실장님은 나를 자기 사무실에 불러놓고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있다며 서류 한 장을 꺼내주었다. 서류에는 에바 에릭슨 김이라는 이름 밑에 간단한 인적 사항이 적혀 있었다. 커버넌트 하우스(Covenant House of California) 부매니저의 부탁이라면서 한번 찾아가서 상담해 주라고 했다. 커버넌트 하우스는 청소년 홈리스들이 기거하는 쉘터다. 에바의 나이가 16세인 것으로 보아 고등학교 1학년일 것이다. 나는 서류 한 장을 책상 위에 놓고 나름대로 상상해 보았다. 어린 소녀가 어쩌다가 노숙자가 되었을까? 한국말은 할 줄 아는지 궁금했다. 부매니저 존스와 약속한 대로 금요일 오후에 커버넌..

소설 창작 2020.08.26

소녀 노숙자 이야기

미주 교포 대학동문회 카톡방에 공문이 하나 떴다. 소설가 손OO 교수님을 모시고 ‘단편 소설 한 편 완성하기‘ 창작 강의를 들을 거라고 했다. 정원 20명을 모아 카톡방을 새로 열고 일주일에 한 번, 12주 동안 강의를 들을 거란다. 나는 귀가 솔깃했다. 지루한 코비드 19 자가 격리 중에 이게 웬 떡이냐 했다. 제일 먼저 등록하겠다고 이름을 올렸다. 등록비가 만만치 않았으나 은퇴한 나로서는 감당할 만했다. 그리고 한 달여를 기다리는 동안 등록하는 동문은 몇 안 되어 보였다. 동문들 중에 시 쓰는 동문은 많아도 소설 쓰는 동문은 몇 안 된다. 첫 강의 날이 다가오면서 이러다가 강의가 무산되는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강의를 이틀 앞두고 동문은 아니지만, LA에 거주하는 분 몇 명이 등록하고 그..

소설 창작 2020.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