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39

별천지 이야기

딸은 해산휴가가 끝나 일터로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데이케어에 맡기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로 아기 맡기는 것도 인원 제한이 있어서 제한된 숫자만 밭는다. 딸은 아이 셋을 맡겨야 하는데 인원 제한에 걸려 자리를 놓치면 큰일이다. 출근하기 이주 전부터 아이들을 맡겼다. 딸은 집에서 놀면서도 데이케어 자리를 확보하느라고 이주치 베이비시터 돈을 지불하면서 일부러 아이를 맡겨야 했다. 베이비시터 가격도 만만치 않다. 그나마 둘째가 기저귀를 떼서 조금 덜 낸다고 해도 이제 겨우 다섯 달 된 아기는 높게 지불해야 한다. 둘이서 번 돈 절반은 베이비시터로 나갈 것이다. 지난 월요일 드디어 아이들을 데이케어에 데려다 주었다. 큰아이(4), 둘째 아이(2)는 이미 데이케어에 드나들어서 익숙하지만, 갓난아기는 베이비시터에게 처..

사랑 2020.10.24

루시가 하룻밤을 무사히 지냈다.

가을로 넘어가는 일요일치고는 기온이 꽤 높다.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 지내면서 털옷으로 무장한 루시는 얼마나 더울까 하는 생각을 했다. 루시도 알아서 맨 마룻바닥에 엎드려 있다. 폭신한 제 자리보다 맨 마루가 시원해서 그럴게다. 루시가 하룻밤을 무사히 지냈다. 세상에 개의 병간호를 하다니, 그것도 운명을 지켜보는 호스피스 간호를 말이다. 자연수명을 다하는 루시는 곱게 늙은 셈이다. 지금 세상에 특별한 병 없이 자연수명을 다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짓지 못하는 것이야 늙었으니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기능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면, 죽어가면서 보고, 듣고, 짖으면서 주인을 얼마나 괴롭히겠는가? 죽기 싫어서 애처로운 눈빛으로 주인을 바라본다면? 도와주지도 못하..

사랑 2020.10.21

루시와 햄스터

딸이 LA에 가느라고 루시와 햄스터를 우리 집에 맡기고 갔다. 딸은 애완동물을 좋아해서 어려서도 개며 토끼, 햄스터를 길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루시만 있었는데 언제 햄스터를 사왔는지 모르겠다. 딸은 동물의 세계를 지켜보는 걸 재미있어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자식에게까지 자기 취향을 전수해 줄 게 뭐람. 햄스터는 손주가 기를 거라도 했다. 햄스터라는 게 내가 보기에는 생쥐와 다른 점을 모르겠다. 다람쥐 케이지 같은데 가둬놓고 먹이를 주는데 낮에는 어디에 숨어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햄스터가 손주 녀석이 아끼는 동물이어서 할머니에게 맡기면서도 주의사항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밤이면 햄스터가 쳇바퀴를 돌려 싸서 시끄럽단다. 아닌 게 아니라 밤에 불을 다 껐더니 이상한 소리가 요란하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사랑 2020.10.18

막내딸은 갈비를 좋아해

막내딸은 갈비를 좋아한다. 앉은 자리에서 LA갈비 서너 개는 먹어 치운다. 친척들이 식당에 모여앉아 저녁을 먹을 때면 각자 가격표를 보아 가면서 고르기 마련인데 막내딸은 거침없이 갈비를 시킨다. 눈치코치도 없는지 무조건 짚고 본다. 어떤 때는 얄밉기도 했지만, 저 좋아서 먹겠다는데 어쩌겠는가. 그것도 다 지나간 이야기다. 지금은 아이가 셋이나 달려서 꼼짝 못 하고 집에 갇혀 지낸다. 코로나 19 시대를 맞아 아이들 얼굴 보기도 어렵다. 금년 여름에 우리 집 뒷마당에서 우리끼리지만 갈비를 두 번이나 구워 먹었다. 뭐니 뭐니 해도 갈비는 차콜(조개탄)에 구워 즉석에서 먹어야 제맛이 난다. 갈비를 구워 먹을 때마다 막내딸 생각이 난다. 두 번씩이나 막내딸 몰래 갈비를 먹은 것 같아서 미안했다. 딸은 갈비를 좋..

사랑 2020.10.16

두 여인

미국 대통령 TV 1차 토론을 지켜보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끝일 줄 모르는 자기 변론과 자기주장, 상대방의 답변 기회를 중간에서 가로채는 식으로 비신사적이며 이기적인 토론 진행을 서슴지 않고 해 댄다. 2차 토론은 트럼프의 코로나19 감염 때문에 비대면 화상으로 하자는 데 트럼프는 반대하고 나섰다. 바이든이 발언할 때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토론은 하지 않겠다는 거다. 금년 초기 코로나19 대응에서 실패했다는 엄연한 사실을 자신은 잘한 거라고 끝까지 우긴다. 코로나19 전염병이 별것 아니라고 시작부터 지금까지 일괄되게 주장했다. 심지어 자신이 코로나19에 걸려 입원했었으면서도 감기처럼 간단하다고 말한다. 국민이 22만 명이나 죽어 가는데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사람치고는 냉혈적이다. 코로나19 희생자와 그..

사랑 2020.10.10

줌(Zoom) 이야기

10월 5일과 6일은 딸들의 생일이다. 2년 터우리인데 어쩌다가 하루 차이로 태어났다. 어려서는 생일이 하루 간격으로 있는 바람에 둘을 합쳐서 한꺼번에 해 먹은 일도 있다. 이제는 각자 나가서 사니까 자기들이 알아서 생일을 차려 먹는지 마는지 늙은 우리는 알 길이 없었다. 마침 코비드 사태로 말미암아 밖에 나가 먹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여서 먹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줌’으로 생일 파티를 대신했다. 줌은 거리에 상관없이 여러 사람이 모여서 왁자지껄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화면 속에서나마 가족이 한데 모여 즐거운 파티를 한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실제로 모여 앉아 떠드는 것처럼 서로 웃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화면은 아이들이 차지하고 어른들은 아이들 이야기로 한 말 또 하고를 해 대지만 들은 이야기 또..

사랑 2020.10.09

가지가 아름다워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추분이라 그런지 날씨가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게 밖에 나가 놀러 다니기에 딱 좋은 기온이다. 텃밭의 호박에 아직도 호박꽃이 피기는 한다만 보잘것없이 초라한 노란 꽃이 자질구레하다. 잎과 줄기가 누렇게 시든 후에 피는 꽃이라는 게 저것도 호박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도 제 딴에는 호박씨라도 남기려고 작은 호박을 밑동에 달고 안간힘을 쓴다. 마치 팔순 노인의 몸부림처럼 보인다. 미련 없이 호박넝쿨을 걷어 내려다가도 작으나마 꽃을 피우는 모습이 가련해서 그냥 보고만 있다. 그런가 하면 가지는 제철을 다시 맞았다. 3월에 심어 5, 6월 한차례 수확을 걷어서 이제 가지 시즌이 끝났나보다 하고 버려두었는데 뜻밖에도 8월로 접어들면서 가지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봄에는 양은..

사랑 2020.09.30

토종 꽃 사랑

걸어서 동네를 돌다 보면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하게 빛나는 정원이 눈에 띈다. 엊그제 지역 신문에까지 등장한 평범한 가정집 정원이다. 특이한 것은 토종 식물로 정원을 꾸몄다는 점이다. 토종 꽃은 이민 온 꽃에 비해서 흐리고 얌전한 색옷을 입었다. 산업의 발달로 모든 게 상업화해가는 마당에 토종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이미 귀하고 대접받아 마땅하리라. 어느 나라나 토종은 화려하거나 현란하지 않다. 식물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도 그렇다. 사람으로 치면 시골 사람이 토종에 가까울진대 시골 사람들은 순진하고 순박하다. 시골 사람들은 진국 한 면이 있는데 꽃도 그렇다. 외국에서 수입해 들여왔거나 상업적으로 개종한 꽃은 색깔부터 화려하고 눈에 띄게 찬란하다. 첫눈에 반하지 않는다면 누가 돈까지 지불하며 사겠는가? ..

사랑 2020.09.02

애호박찜

벌써 여러 날째 아침에 커튼을 열면 하늘이 찌뿌드드한 게 영 기분이 좋지 않다. 한국은 여름 장마가 일찍 왔다는데 샌프란시스코는 비는 없고 날씨만 흐리다. 흐린 게 아니라 안개인지 연기인지가 끼어있어서 흐린 것처럼 보인다. 오전에만 흐리고 오후로 들어서면 다시 맑아진다. 내가 일어나자마자 창밖부터 내다보는 까닭은 호박 넝쿨이 밤새 잘 지냈나 보기 위해서다. 녹색 잎이 싱그럽고 중간 중간에 노란 호박꽃이 피었다. 호박꽃을 보면서 치사하게 저 꽃이 암컷 꽃이냐 수컷 꽃이냐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호박이 영글어 딸 때마다 호박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호박은 종자를 퍼트리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열정을 쏟아 붓는데, 호박이 익을 만하면 따 가니 얼마나 속상해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 호박 줄기를..

사랑 2020.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