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이 아이 셋을 데리고 우리 집에 왔다.
이제 겨우 돌이 지난 막내 손주가 열이 나서 병원에 드나들다가 귀에 염증이 생겼단다.
치료받는 중에 사내 녀석이 장난이 심해서 오른팔을 삐었다나? 어쨌다나 하면서
매일 병원문이 닳도록 드나든 모양이다.
오늘은 좀 낳은 것 같다면서 애를 안고 들어왔다.
손주 녀석은 제 어미 품에 안겨 떨어질 줄 모른다.
딸은 막내 녀석을 안고 있어서 꼼짝도 못 한다.
내가 안아주겠다고 해도 녀석이 어미에게만 달라붙어서 더 야단이다.
아내는 막내딸이 수제비를 좋아한다면서 수제비를 끓인다.
딸은 나를 닮아 수제비를 좋아한다.
원래 아내는 서울 사람이라서 수제비가 뭔지 모른다.
그보다는 집에서 수제비는 안 끓였던 모양이다.
나는 수제비를 많이 먹어서 어떻게 끊이는지 안다.
딸이 어렸을 때 내가 수제비를 끓이면 맛있어했다.
언제 수제비 또 끓일 거냐며 졸라대곤 했었다.
내가 끓이는 수제비는 강원도 식이어서 수제비에 감자와 파를 썰어 넣는 거다.
한 집 아이들이라고 해서 입맛이 다 같은 것도 아니다. 제각각이다.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 따로 있다.
그런 걸 보면 맛이라는 것도 타고나는 것 같다.
부모의 입맛을 닮는 자식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식도 있다.
자식이 셋이나 되는데 큰 애들은 수제비를 먹지 않는 데 막내딸만 수제비를 좋아한다.
아내가 차려준 밥상에서 막내딸과 나는 커다란 사발에 수제비를 담아놓고 맛있게 먹는다.
딸은 손자를 안고 앉아서 먹자니 손자 녀석이 저도 먹겠다고 덤비는 바람에
딸을 손자 손 걷어치우랴, 수제비 먹으랴 중간중간 만두도 집어 먹으랴 바쁘다.
하도 손자 녀석이 먹겠다고 덤벼서 작은 종지에 수제비 감자를 건져 내어 잘게 부순 다음
손자 입에 넣어주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딸은 수제비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
보기에 딱하다.
내가 먼저 끝내고 손주를 안아주겠다고 했다.
손주는 안 오겠다면서 제 어미에게 더 찰싹 엉겨 붙는다.
그냥 저 좋은 대로 하라고 놔뒀다가는 어미를 잡아먹을 것 같아서 강제로 빼앗았다.
우는 손자를 안고 집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손자의 혼을 홀렸다.
손주야 아직 어리니까 지가 엄마 속을 썩이는지 어떤지 알 턱이 없다.
내가 어렸을 때 외할머니는 늘 어미 속 썩이지 말라 하며 당부하던 생각이 난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도 엄마 속을 무척 썩였나 보다.
외할머니가 나만 보면 엄마 속 썩이지 말라고 했으니까.
내가 9살 때의 일인데도 엊그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나는 외할머니.
외할머니는 나의 엄마 고생하는 게 애처로워 손주를 나무랐고
나는 내 딸이 자식에게 씨 달이는 게 애처로워 손주를 빼앗아 안았다.
손자는 귀여워도 내 자식만큼 귀하지는 않다.
자식은 나이가 들어도 자식이다.
내 눈에는 자식이 아이들에게 시달리면서 고생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딸은 고생이 행복이라고 한다.
고생하지 않으면서도 행복한 길은 없을까?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했는데 과연 그럴까?
머드(진흙) 페스티벌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머드 풀에 뛰어들어 진흙을 잔뜩 묻히고,
얼굴과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깔깔대면서 사람들과 같이 뒹구는 게 행복할까?
아니면 깨끗이 차려입고 옷이 더러워질까 봐 머드와 간격을 두고 서서 남들이 노는 거나
바라보면서 즐기는 게 행복일까?
한여름 더위에 엉뚱한 생각에 휘말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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