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교포 대학동문회 카톡방에 공문이 하나 떴다.
소설가 손OO 교수님을 모시고 ‘단편 소설 한 편 완성하기‘ 창작 강의를 들을 거라고 했다.
정원 20명을 모아 카톡방을 새로 열고 일주일에 한 번, 12주 동안 강의를 들을 거란다.
나는 귀가 솔깃했다. 지루한 코비드 19 자가 격리 중에 이게 웬 떡이냐 했다.
제일 먼저 등록하겠다고 이름을 올렸다.
등록비가 만만치 않았으나 은퇴한 나로서는 감당할 만했다.
그리고 한 달여를 기다리는 동안 등록하는 동문은 몇 안 되어 보였다.
동문들 중에 시 쓰는 동문은 많아도 소설 쓰는 동문은 몇 안 된다.
첫 강의 날이 다가오면서 이러다가 강의가 무산되는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강의를 이틀 앞두고 동문은 아니지만, LA에 거주하는 분 몇 명이 등록하고 그다음 날은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 두 명이 등록했다.
손OO 교수님 카톡방이 새로 열렸고 각자 자기소개가 있었다.
어디 사는 누구라고 하고 e-mail 주소를 올리는 거다.
나도 이름과 거주지, 이메일 주소를 올렸다.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사람은 나 말고 엘리자벳이라는 동문이 한 분 있는데
같은 지역이라며 반가워하는 글이 올라왔지만 나는 미처 답 글도 달지 못했다.
동문 카톡방을 드나들어도 보기만 했지 댓글을 써본 일이 없어서 그냥 넘어갔다.
엘리자벳은 “이런 무례한 사람이 다 있어” 했을 것이다.
그럭저럭 정원이 다 찼고 강의 시간이 임박해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보내줄 거란다.
이 메일로 과제물이 날아와서 프린팅했더니 200여 장은 넘지 싶다.
첫 강의 시간에 들을 주제를 읽어보았다. 소설이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한다.
소설 창작 강의를 들으면 소설을 잘 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강의는 소설에 대한 관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소설을 잘 쓰게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강의는 외식과 같아서 이름 있는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영양을 섭취하려면 집밥을 먹어야지 외식으로는 안 된다.
소설을 쓰는 건 집밥을 먹는 것과 같아서 늘 밥 먹듯 써야 한다.
우리 집 잔디가 동네에서 가장 잘 자란다. 녹색에 싱싱한 자태를 어김없이 뽐낸다.
나는 녹색 잔디를 바라볼 때마다 자랑스럽다.
잔디가 동네에서 가장 보기 좋은 까닭은 그만큼 잔디에 정성을 쏟아붓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이면 10분씩 잔디에 물 주는 걸 잊지 않았고, 매주 화요일 아침에는 깎아주고,
봄가을로 비료를 주었다.
혹시 잔디에 잡초가 나지 않을까 살펴보면서 클로버 줄기를 잡아 뿌리까지 찾아내 뽑아낸다.
민들레가 피면 곧 뿌리까지 뽑아버렸다.
내가 잔디에 얼마나 많은 애정을 보이느냐에 따라 잔디는 건강한 상태, 싱싱한 모습으로
보답해 준다.
소설 쓰는 것도 잔디밭 가꾸는 것과 같아서 정성과 애정을 기울이는 만큼만 보상을 받는 것이다.
강의가 있는 금요일 저녁 7시가 다 되도록 카톡방은 조용했다.
카톡방에 교수님이 나와서 강의하는 줄만 알고, 나는 아무 준비 없이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휴대전화만 보고 있는데 10분쯤 남겨놓고 카톡방이 바빠졌다.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뜨면서 줌 콜로 들어오란다.
줌 콜은 무엇이며 어떻게 들어가란 말인가.
다른 분들은 이미 들어가서 소리가 안 들리느니 화면이 왜 안 뜨느니 하며 야단인데
나는 줌 콜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니 어디로 어떻게 무엇을 하라는지, 깜깜하다.
나처럼 모르는 동문이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고 카톡으로 물었다.
줌 콜 앱을 깔아야 한단다.
줌 콜 앱을 깔아야 한다니 나는 당황해서 아내를 불렀다.
나 혼자보다는 두 사람이면 나을 것 같아서다.
아내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다. 카톡방은 계속 울리지, 시간은 5분밖에 남지 않았지,
마음이 급해지면서 더욱더 안타깝다.
얼른 막내딸을 카톡으로 불러냈다. 딸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어서 그랬다.
딸의 안내를 받아 컴퓨터 구글로 들어가서 줌 콜을 열었다.
교수님 얼굴이 보이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딸이 없었다면 어떻게 할 뻔했나, 아찔하다.
영상 강의는 몇 번 들어본 경험이 있어서 생소하지는 않았다.
강의를 시작부터 듣지는 못했으나 인사하고 자기소개하고 뭐 그런 식이었을 것이다.
20명이 등록했는데 강의에 참석한 사람은 17명뿐이다.
아마도 세 사람은 다음 강의에나 나타나지 싶다.
20명 중에 남자는 나와 롱비치에 거주하는 분, 단 둘이다. 나머지는 모두 여자들이다.
내 모니터에는 카메라 렌즈가 없어서 내 얼굴은 나오지 않았다.
별도의 렌즈를 사서 걸어놓았었는데 사용하지 않다 보니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차라리 내 얼굴이 화면에 안 뜨는 게 더 좋다.
남을 의식하지 않으니 마음이 편하고 더 잘 들린다.
젊은 여자들만 잔뜩 있는데 늙은 나의 얼굴은 보여줘서 무엇에 쓰겠나.
“예의가 아니다”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교수님한테 잘 보여서 학점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강의를 듣기만 하는 데 구태여…
강의를 듣는 동안 단편 소설 한 편을 써서 제출하던지, 이미 써놓은 소설이 있으면 그 작품을
보내든지, 아무튼 완성한 소설을 보내달란다.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를 종합해 보면 어떤 학생은 여러 편 써 놓은 것을 다 보내도 되느냐는
소리도 들리고, 한 편도 써본 경험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도 있고,
완성이 덜 된 소설을 보낼 테니 수정해 달라는 말도 들린다.
한 편이라고 정했으면 한 편이지 이럴 때 꼭 딴소리하고 나서는 사람은 어디 가나 있기
마련이다.
두 시간짜리 강의가 끝나면서 그동안 의문에 싸여 있던 문제 하나가 풀렸다.
신춘문예 공모에 보면 200자 원고지 70매, 또는 80매라고 적혀 있지만, 당선된 작품들을
보면 100매가 넘는다. 결국은 분량보다 완성도를 본다는 사실이다.
나는 쓰다만 소설을 다시 들춰내어 이 기회에 완성해 보려고 읽어보았다.
노숙자 소녀의 이야기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소녀가 노숙자다.
소녀는 길을 계속 걸어야만 한다. 잠시 쉬려고 하면 누군가 찝쩍대 싸서 쉴 수 없다.
소설이 쓰여지는 만큼 매주 올릴 예정이다.
'소설 창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로나 시대에 인천 공항 입국 (0) | 2021.04.15 |
---|---|
통일이 눈 앞에 보인다 (0) | 2020.12.30 |
잠실 경기장에서 벌어진 세기적인 권투 경기 (0) | 2020.11.27 |
문학 강의를 듣고 나름대로의 생각 (0) | 2020.08.30 |
소녀 노숙자 (0) | 2020.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