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창작

문학 강의를 듣고 나름대로의 생각

샌프란시스코 메아리 2020. 8. 30. 10:02

내가 여섯 살 때 친할머니한테서 들은 옛날이야기가 있는데 그중에서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이야기다. 외딴 섬 감옥에서 자루에 담겨 바다에 던져지고,

자루를 찢고 나와 복수 한다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잊히지 않는 이야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커가면서 의문이 생겼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명작 중의 하나인데 그 옛날 어떻게 할머니가 그 이야기를 알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한글도 모르던 할머니가 소설을 읽었을 리는 만무하고, 누군가에게서 들었을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재미있어서 기억했다가 손주에게 들려주었으리라.

나 역시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기억하고 있다.

이야기가 재미있어서라기 보다는 플롯이 탄탄해서 기억한다고 하는 게 옳을 게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하는 아이다.

나는 예습이나 복습 같은 건 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은 내 팽개쳐놓고

놀기에 바빴다. 하지만 지금은 나 좋아서 하는 공부이다 보니 저절로 철저히 하게 된다.

나는 강의를 듣기 전에 읽어보라고 한 작품들을 읽으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잊어먹기 선수다. 읽고도 잊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한 가지 묘안을 짜냈는데 읽은 이야기를 아내에게 해 주는 거다.

복기하면 기억이 오래가기 때문이다.

묘안이라고 할 것도 없이 작품이 하도 재미있어서 남에게 이야기해 주지 않고는

못 배기겠는 거다. 읽는 대로 곧바로 아내에게 들려주었다.

원숭이의 발, 데카메론, 어느 관리의 죽음, 애수, 자고 싶다……

 

소설의 플롯은 구상이고 구상은 줄거리다.

줄거리가 탄탄한 이야기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읽어도 명작들은 플롯이 확고하게 살아 있다.

목걸이, 20년 후, 크리스마스 선물, 김동리, 박경리 이런 작품들은 어려서 읽었지만 지금도

스토리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내가 재미있어서 빼놓지 않고 읽었던 박완서, 권여선, 신경숙 이런 작가들의 작품은

읽기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기억나는 건 없다.

그 이유가 플롯과 아이러니 차이라는 걸 배웠다.

 

나는 소설을 쓰기 위해서 갈등과 사건을 찾아다녔다. 그것도 눈에 띄는 갈등, 사건을.

그러나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아이러니를 그리면 되니까.

긴가민가 하는 흐릿한 갈등을 그리려면 글맛이 살아있어야 할 것이다.

글 읽는 재미는 글맛에서 나오고 글맛은 작가의 재주다.

음식 손맛이 있는 사람은 아무거나 조몰락거리다가 내놓아도 맛이 그만이다.

음식 손맛이 없는 사람은 오만가지 재료를 다 갖다줘도 도루묵이다.

맛깔 나는 글솜씨도 타고나는 거 맞다. 하지만 맛깔도 기술이다.

기술이란 과학이어서 과학은 배우고 익히면 발전시킬 수 있다.

음식 손맛을 타고난 사람만이 고급 호텔 쉐프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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