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창작

소녀 노숙자

샌프란시스코 메아리 2020. 8. 26. 09:32

 

단편소설:  소녀 노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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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클랜드 사회복지시설에서 시간제 복지사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실장님은 나를 자기 사무실에 불러놓고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있다며 서류 한 장을 꺼내주었다. 서류에는 에바 에릭슨 김이라는 이름 밑에 간단한 인적 사항이 적혀 있었다.

커버넌트 하우스(Covenant House of California) 부매니저의 부탁이라면서 한번 찾아가서 상담해 주라고 했다.

커버넌트 하우스는 청소년 홈리스들이 기거하는 쉘터다. 에바의 나이가 16세인 것으로 보아 고등학교 1학년일 것이다. 나는 서류 한 장을 책상 위에 놓고 나름대로 상상해 보았다. 어린 소녀가 어쩌다가 노숙자가 되었을까? 한국말은 할 줄 아는지 궁금했다.

 

부매니저 존스와 약속한 대로 금요일 오후에 커버넌트 하우스로 향했다.

커버넌트 하우스는 기역 자로 된 2층 건물이었다. 정문으로 들어서자 넓은 로비 중앙에 소파와 티 테이블이 놓여있고 정문 맞은 편에 직원 사무실이 부매니저 방과 나란히 있다.

그 옆 방문에 작은 글씨로 상담실이라고 적혀 있다.

나는 부매니저 사무실에서 커버넌트 하우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부매니저가 흑인이기는 해도 매우 친절했다. 언 듯 보기에도 사십은 넘어 보이는 중년 여자다. 부매니저가 두 명 있는데 한 사람이 16명 청소년을 담당하고 있단다.

존스는 커버넌트 하우스라고 해서 노숙자 청소년들이 제멋대로 사는 곳이 아니라고 설명해 주었다. 커버넌트 하우스는 16세 미만은 안 받아주고 한번 들어오면 23년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커버넌트 하우스에는 홈리스이지만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청소년들만 기거하게 되어있어서 정신질환이나 히피, 알코올, 마약 중독 같은 증세가 보이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에바가 안정적으로 고등학교에 다니기 위해서는 커버넌트 하우스가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버넌트 하우스 부매니저 존스는 16명이나 되는 청소년들을 관리하느라고 바쁘단다.

아픈 아이는 병원에서 매주 봉사 나오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게 해주고, 아이들 마음의 상처를 다독여주는 엄마 역할도 해야 한다.

내가 홈리스 아이들을 십 년도 넘게 돌보고 있지만, 한국 애는 에바가 처음이에요. 에바는 내게 마음을 털어놓지 않아서 사실 나는 에바에 관해서 아는 게 없어요. 왜 홈리스가 되었는지, 부모는 있는지, 어떻게 이곳으로 굴러들어왔는지 통 말을 안 하니 알 수가 있어야지요. 벌써 6개월이 지났는데 생활하는데 불편한 건 없는지. 누가 괴롭히지는 않는지 궁금한 게 많아요. 그래서 한국인 복지사를 찾았던 거에요.”

 

커버넌트 하우스는 홈리스 청소년들이 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해 주는 곳이다. 학교에 다니는 것을 돌봐 주기도 하고, 고등학교를 마친 소년 소녀들에게는 직업 훈련을 시켜준다. 18세 이상이면 이곳에서 2년까지 요리사나 음악, 컴퓨터 프로그래밍, 영화제작 등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고 학원에도 다닐 수 있다.

정신적인 문제가 없는 한 독립해 나갔다가 실패한 아이들도 언제든지 다시 돌아와 새 인생을 설계할 수 있게 도와준다.

청소년 노숙자들에게 커버넌트 하우스는 매력적인 곳이다. 정원이 32명으로 정해져 있어서 운이 좋아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편안한 잠자리가 있고, 자원봉사 요리사가 만든 훌륭한 음식이 제공되며, 청소년 노숙자들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도와주려는 마음씨 고운 직원들이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 공부할 수 있는 컴퓨터 방이 따로 있다는 것이 커버넌트 하우스의 장점이다.

존스는 나를 데리고 건물 내를 투어 시켜주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