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35

'어떤 비밀' 책을 출간하면서

‘소년은 알고 싶다’ 책이 출간되고 일주일이 지났다. 책 제목을 놓고 고심했었다. ‘엄마의 비밀’ ‘소년은 알고 싶다’ 중에서 어느 제목으로 정할 것인지 지인들에게 물어보았다. 5:4의 비율로 ‘소년은 알고 싶다’가 우세했다. 제목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하지만 ‘어떤 비밀(A Certain Secret)’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엊그제 글을 쓰다가 생각났다. 짜장면을 많이 준다고 해서 단골손님이 되는 것이 아니고 조금 준다고 해서 손님이 끊기는 것도 아니다 맛이 좋으면 자연히 발길이 모이게 되어 있는 것처럼 책 제목이 어떠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용이 충실하고 재미있으면 잘 팔리는 거다. 서울 시내에 나가는 길에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렀다. 일요일 저녁나절이어서 그랬는지 손님이 우글거렸다. 전철 안처럼 복작댔..

문학 2022.01.18

살면서 가장 행복한 날

한국예총 ‘예술 세계’에서 장편소설이 당선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던 날. 배달되어온 꽃바구니. 꽃바구니가 일주일이 넘으면서 시든 꽃과 살아남은 꽃이 구분된다. 아직도 살아남아 숨 쉬는 꽃은 추려내서 줄기가 긴 꽃은 맥주 머그잔에 옮겨 담고 줄기가 짧은 꽃은 플라스틱 박스에 물을 담고 꽂아놓았다. 그런대로 꽃의 면모를 유지하면서 버텨간다. 식물이라고 해서 수명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어떻게 가꿔주느냐에 따라서 수명이 달라진다. 엄동설한에 꽃보다 귀한 게 있을까? 그보다도 추운 겨울에 녹색 나뭇잎도 꽃이나 매한가지로 신선하다. 꽃이 있음에 방 안이 환하고 향기롭다. 나는 한국에 와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면 슬프다. 동창들과 카톡으로나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슬퍼진다. 과거를 이야기하게 되고 추억 속의 흑..

문학 2021.12.31

글 쓰는 취미

아침이면 일기예보부터 챙긴다. 뭐, 어디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 걷기에 나서려면 기온이 어떤지 가늠해 보기 위해서다. 아침에 반바지에 반소매 러닝셔츠를 입었다. 11월도 중순인데 여름처럼 입다니! 입으면서도 나 자신 신기하다. 기온이 의외로 따스하다. 이번 주 내내 따듯했다. 날이 춥지 않으니 밖에 나가 활동하기 좋고 기지개를 켜고 걸어서 살만하다. 다음 주부터는 기온이 내려간다니 좋은 기온도 며칠 남지 않았다. 나는 집에서 놀고먹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내 나이 또래가 되면 직장에서 은퇴하고 가족들로부터도 밀려나면서 할 일이 없으니 우두커니 시간만 보내기 마련이다. 엊그제는 모처럼 맥도널드에서 친구를 만났다. 팔아주는 것도 없이 친구는 커피나 마시고 나는 거저 주는 물이나 마시면서 노닥..

문학 2021.11.18

이발소 가는 길

지금은 코로나 시대가 돼서 이발소도 예약하고 오란다. 이발소에 앉아서 노닥이는 것도 방역 위반이 돼서 예약은 필수가 되고 말았다. 내가 단골로 다니는 ‘최 이발소’는 살림집 뒷마당 구석에 조그마하게 아이들 놀이방처럼 지어놓고 이발소로 활용하고 있다. 최 씨도 열심히 돈 벌어야 할 나이가 지났으므로 월요일하고 목요일은 쉰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월요일에 전화를 걸면서 머리 깎느냐고 물어보았다. 내일 오라고 하기에 오전 11시로 예약을 해놓았다. 예약 시간에 맞춰 이발소에 갔는데 떡하니 어떤 아이를 앉으라고 하면서 나보다 먼저 깎아 준다. 하는 수 없이 기다리고 있다가 머리를 깎았다. 이발료를 지불하고 나오려는데 이발사 최 씨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미안했던 모양이다. ‘다음부터는 예약하고 오세요’하는 게 ..

문학 2021.10.19

사랑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이야기가 또 있을까?

미주 한국일보에 실린 ‘작지만 확실한 사랑’ 기사. 지금은 강의가 종료됐지만, 수필 강의를 들을 때는 학생이 30여 명은 됐었다. 온라인 줌 강의였는데 일주일에 2시간짜리였다. 특이한 것은 학생 30여 명이 모두 여자라는 점이다. 나만 빼놓고……. 강의 기간 2달 동안 내가 얼굴을 내 비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여자들은 어딘가 글이 쓰고 싶은 욕망이 숨어있는 모양이다. 너나없이 글을 쓰고 싶어 하니 말이다. 책을 팔아주는 사람도 여자들이니 어느 면에서는 출판문화에 기여하는 바도 있는 것 같다. 글 잘 쓰기를 원하는 학생들의 일괄된 요망은 사랑이야기를 쓰라는 주문이다.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게 그렇게 흔한 게 아니지 않은가? 평생에 한 번 아니면 두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인데 날구장창 사랑이야기를 어..

문학 2021.09.14

작지만 확실한 사랑

새 책을 출간했다. 나는 책 표지로 사용해 주십사 하고 출판사에 왼쪽 사진을 보냈는데 출판사에서 오른쪽 사진처럼 찍어냈다. 선명도며 색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나의 경험을 썼을 뿐인데 출판사에서 ‘시와 에세이’로 분류했다. 여러 번 책을 냈지만, 책으로 출간했으면 그만이지 출간된 책을 내가 직접 되 읽어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책은 받아드는 순간 느낌이 달랐다. 3년 전에 써놓은 글인데 어떨지, 펴들고 읽어보았다. 처음 몇 페이지만 읽으려고 했다가 그만 내가 써놓고도 재미가 쏠쏠해서 읽던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밥 먹으면서도 읽었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그렇다.

문학 2021.08.20

내가 풀을 꺾어 들었을 때, 풀은 내게 와 꽃이 되었다.

가로수마다 나무 밑에 가로세로 1m 넓이의 네모난 자신만의 정원을 가지고 있다. 원래 나무는 땅에서 자라는 건데 도시의 인도교는 모두 시멘트로 덮어씌우다 보니 나무에게 미안해서 그랬는지 조금 숨통을 틔어놓았다. 나무뿌리도 숨을 쉬어야 할 텐데 땅을 시멘트로 덮어버리면 뿌리는 숨 쉴 수가 없다. 숨이라도 쉬라고 나무에게 네모난 정원을 주었는데 정원에 풀이 무성하다. 흙만 보이면 풀이 나와 질서 없이 자라는 까닭은 풀뿌리가 흙을 뚫고 들어가 땅에 숨통을 틔우려는 것이다. 그 통에 나무뿌리는 숨도 쉬고. 네모난 작은 정원에서 자란 풀들이 나에겐 아름답게 보이기에 꺾어 들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본다. 풀을 꺾어다가 뭘 하려나 궁금한 모양이다. 풀을 꺾어 들기는 했으나 풀의 이름도 모르겠다. 건너는..

문학 2021.08.18

시상식도 줌으로 대신 한다.

한국일보 문예 시상식이 목요일 오전 11시라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줌으로 한단다. 나는 일주일 전부터 준비했다. 머리가 길어도 깎지 않았다. 머리숱이 많아야 그나마 늙은 티가 덜 날 것 같아서다. 줌에 얼굴이 나갈 터인데, 조금이라도 젊게 보여야 한다. 머리 하얀 노인이 젊은 사장에게서 상을 받는 건 보기에 좀 그렇다. 머리 염색부터 했다. 머리를 헤어드라이어로 잘 빗어넘기고 수염도 깨끗이 밀었다. 셔츠도 색깔 있는 거로 골라 입었다. 화면에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차렸다. 일찌감치 컴퓨터 앞에 앉아 줌 주소를 클릭했다. 미주 한국일보 김 위원이 email로 줌 주소를 두 개나 보내왔다. 하나는 수상자들이 클릭해서 들어오라는 주소이고 다른 하나는 친지들이 지켜볼 수 있게 아는 사람들에게 나..

문학 2021.07.19

절반의 기회

5월 22일 오후 7시 30분. 3호선 전철은 화정역을 지나 막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어두워지기에는 아직 맑은 빛이 남아 있다. 창밖으로 멋대가리 없는 55층짜리 벨라시타 아파트 빌딩 다섯 동이 우뚝 솟아있고, 맘모스 건물 옆으로 건물보다 더 큰 붉은 태양이 막 넘어가고 있었다. 계절의 여왕 5월에 도시의 석양은 지극히 아름답다. 하늘을 붉게 물들인 태양은 잠잘 자리를 찾아 무거운 몸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있는데. 이 아름다운 장면을 누구에게라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는다. 어떻게 사진에 담을 수 있을까? 전철은 대곡역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대곡역에서 내려 사진을 찍을까? 내리면 다음 전철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망설이는 시간이 길고도 짧았다. 전철이 서기가 무섭게 내렸다. 역사 창가로 다..

문학 2021.05.28

동산에 핀 들장미

산에서 꺾어온 들장미 시든 배춧잎처럼 축 늘어졌네 물컵에 꽂아놓고 잠시 잊고 있다가 생각나서 가 보았네 영양제 한 대 맞았나? 활기 넘쳐 보이네 내가 소중하다고 해서 남들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젊은 조카사위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동생과 나는 성묘하러 갔다. 공원묘지 동산을 거닐다가 들장미를 만났다. 기후변화가 여기까지 밀려와 동산을 정글로 만들더니 어디서 가져왔는지 들장미도 피웠다. 들장미 넝쿨이 꽤 넓게 번져 있었다. 빨간색 장미가 대부분이고 드문드문 핑크색도 보인다. 들장미는 꽃송이가 집 장미보다 작다. 집 장미는 남자 어른 주먹만 하지면 들장미는 아기 주먹보다도 작다. 작지만 빨간색이 정열적이며 꽃잎이 빈틈없이 차곡차곡 채워있다. 들장미가 하도 예뻐서 꽃 한 송이와 몽우리가 여러 개 달린..

문학 2021.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