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35

어머니는 나를 올라게 하신다

어머니는 나를 놀라게 하신다. 즐겁게 해 주시려고 그러겠지만 참으로 신비롭고 놀랍다. 예전에 들렸을 때는 라이락이 무리를 이루어 나를 놀래키더니 이번에는 꽃동산으로 나를 놀라게 하였다. 산소로 올라가는 초입, 라이락이 있던 자리에 부채붓꽃이 널부러져 있어서 놀랐다. 다음엔 흰색 찔래꽃이 끝없이 이어지더니 빨간 들장미가 아름답게 피었다. 엉겅퀴의 보라색이 구색을 맞추는가 하면 노란 금계국이 동산을 덮었다. 꽃이 만발한 공원묘지 동산을 보고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나. 여름이 되기에는 아직 이른 봄이다. 동생더러 전철을 타고 금곡에 가자고 했다. 사위가 운전할 테니 사위 차를 타고 가잔다. 젊은 사람이 운전하겠다는데 믿고 타도될 것 같아서 그러자고 했다. 일요일 아침이라 사패산 터널을 지나 달리는 내내 차..

문학 2021.05.24

찻잔과 종이컵

오후의 차 시간이 다가왔다. 주전자에 물을 담아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았다. 물이 끓기 전에 종이컵을 꺼내 놓고 블루베리가 섞인 다크 초콜릿(Dark Chocolate with Blueberries) 두 조각을 컵에 담았다. 종이컵을 쓰려고 한 까닭은 마신 다음 컵을 씻기가 귀찮아서 종이컵으로 마시고 버리겠다는 심산이었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창가로 다가와 비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차를 마신다는 게 그냥 차 물을 마시겠다는 게 아니지 않은가? 차를 마신다는 것은 첫째 시간의 여유를 느끼겠다는 것이고. 둘째 차를 마시는 분위기에 젖어 들겠다는 것이며, 셋째 차의 향을 먼저 음미하고 마음을 가라 안인 다음 차 한 모금으로 입안에서 향을 맛보겠다는 것이다. 차를 마시는 절차에서 분위기는 매우 중..

문학 2021.05.19

민들레곷 행복

아침 해를 한 아름 끌어안고 행복에 취해 노래 부르는 노란 민들레를 만났다. 담벼락 밑에 홀로 피었을망정 행복해서 죽겠다는 표정이다. 아침 운동길에 만난 민들레다. 나는 원래 게으르게 태어나서 예전에는 무척이나 걷기가 싫었다. 꼭 필요한 거리만 걸었지 운동으로 걷는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 자극을 받고 습관을 바꾸게 되었다. 신발에 모래알이 하나 들어간 모양이다. 디딜 적마다 따끔거려서 걸을 수가 없다. 벤치에 앉아 신발을 벗었다. 쌀알만 한 모래알을 꺼냈다. 요 작은 모래알 하나가 나를 괴롭혀 꼼짝 못하게 만들다니, 결국 벤치에 주저앉아 신발을 벗었다. 지금은 사망한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 목에는 커다란 혹이 나 있었다. 혹이 너무 커서 아프거나 불편할 것 같아도 그는 끄떡없이 ..

문학 2021.02.20

코로나로부터 안전한 줌 파티

늙으면 생일은 왜 이리도 빨리 찾아오는지 반가워하지 않아도 염치불구하고 고개를 내민다. 애들은 생일을 손꼽아 기다리는데 노인은 생일이 달갑지 않은 까닭은 남은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인생의 가장 큰 불안은 단축되는 시간에 관한 공포다. 반드시 코로나에 걸려야만 공포심이 생기는 게 아니라 자연현상으로 늙어간다 하더라도 공포는 어김없이 다가온다.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은 건강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생일이라고 가족이 한데 모였다. 모이기는 모였다만 김빠진 모임이라 반가우면서도 씁쓸하다. 그저 살아있다는 모습을 확인하는 것만 같다. 생일 파티 생일파티가 줌으로 열리네 올 사람은 다 왔건만 가공 음식처럼 정성이 빠진 만찬이네 파티는 세 가지 행복이 있어야 맛인데 만나는 행복 먹는 행복 떠드는 ..

문학 2021.02.16

노루 생각

기상청 예고대로 밤새 강풍이 불었다. 비도 뿌렸다. 창문이 흔들리고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도 들렸다. 어두운 밤에 비바람이 치면 소리로만도 위협적이다. 불안하고 무섭기도 하다. 볼 수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소리는 들리는 만큼 겁도 난다. 무엇인가 날아가고, 부서지고 제자리를 지키지 못할 것 같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났다. 밖이 고요한 게 이상하다. 간밤에 무섭게 불던 비바람이 어디로 갔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먼동이 보인다. 비바람인지, 폭풍인지는 빛이 무서워 사라지고, 조용히 그것도 얌전하게 아침을 기다린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날이 밝으면서 강풍에 얻어맞은 현장이 드러났다. 나뭇잎이 널브러지게 흩어져 있고 울타리 송판이 여러 장 날아갔다. 틈새로 노루가 뒷마당에 들어와 “이게 웬 떡이..

문학 2021.01.28

앞집 후리오네 개

겨울이라지만 아침 해가 퍼지면서 온기가 돈다. 집 앞에 나서는데 지나가던 차가 정지 하더니 백업해서 내 앞에 섰다. 길 건너 후리오네 집을 가리키면서 개가 지붕위에 올라갔단다. 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나 했다. 운전사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차에서 내리면서 후리오네 집으로 가더니 초인종을 누른다. 아무리 눌러도 대답이 없다. 당연한 거다. 오늘 멕시칸 축제가 있는지 아침에 온 식구가 초파일 연등 같은 걸 들고 나갔으니 빈 집이 맞다. 어깨를 으쓱하면서 차로 돌아온 여자가 다시 지붕위의 개를 바라보면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떠나갔다. 나는 안다. 흑갈색 말티즈, 저 개는 지붕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거라는 걸. 개는 종류도 다양하다. 생판 보지 못한 개도 많다. 개의 지능은 서너 살 아이와 같다고 했..

문학 2021.01.20

동백꽃 사랑

앞마당, 옆집과 경계선에 동백꽃이 피었다. 동백도 동백나름이지 이건 우리나라 남쪽에 가면 피는 동백이다. 동백꽃도 종류가 많아서 한 50여종 된다더라. 동백꽃 하면 선운사 뒤뜰에 동백꽃이 볼만하다고 시인마다 읊어대기에 일부러 큰 맘 먹고 멀리 선운사까지 동백을 보로 갔었는데 동백나무가 숲을 이뤘건만 숲이 너무 무성해서 진작 꽃은 어디에 있는지 잘 보이지 않더라. 동백꽃 서정주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로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이러 피지 않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후일 왜 많은 시인들이 선운사 동백을 시로 읊었는지 알게 되었다. 꽃 중의 꽃 장미도 시들면 꽃잎이 하나둘 떨어진다. 꽃들은 한물가면 잎이 떨어져나간다. 하지만 동백꽃..

문학 2021.01.16

아침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

아침에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다. 코호트격리 요양병원 비명 "이러다 다 죽는다, 제발 빼달라" “오늘내일 중환자 병실로 이송하지 않으면 4~5명이 숨질 위험이 큽니다. 제발 환자 좀 빼내주세요.” 서울 구로구 미소들요양병원의 한 의료진은 27일 오후 간곡히 호소했다. 기자와 통화하기 1시간 전에 80대 환자가 숨졌다며 침통해했다. 사흘 전 이 환자를 위·중증 환자 리스트에 올려 이송을 촉구했지만 소용없었다. 그새 혈중 산소포화도(정상은 95 이상)와 혈압이 뚝뚝 떨어졌고, 소변이 나오지 않다가 끝내 숨졌다. 이 병원의 두 번째 사망이다. 몇 달 전에 출간한 나의 소설집 ‘유학’에 실린 ‘코로나 19 팬데믹’의 내용이 지금 막 한국에서 실현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내용 일부분을 소개한다. ***** ..

문학 2020.12.28

책을 출간하고 나서

12월이면 비가 와야 하는 우기임에도 불구하고 비는 한 방울도 오지 않고 화창한 날씨에 따듯하기만 하다. 엘리뇨인지 뭔지가 찾아왔단다. 그저께는 바람이 몹시 불었다. 강풍이 태풍처럼 불었다. 바람이 세게 불면 새들은 날지 못한다. 어느 구석에 틀어박혀 꼼짝하지 않는다. 뒷마당 키 큰 나무에 매일 밤, 새가 와서 잠을 잔다. 나무 밑 한 곳에만 새똥이 싸이는 것으로 보아 나뭇가지에 앉아 잠을 자는 모양이다. 오늘처럼 강풍이 불어대는 날은 어디서 잤는지 궁금하다. 아침을 먹으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바람 때문에 날지 못하는 참새가 화분 사이를 종종걸음으로 다니면서 무엇인가를 주워 먹는다. 새도 먹기는 먹어야 하겠는데 바람이 불어서 날아가지는 못하고 가까운 근처 땅바닥에서 먹을 것을 찾는 것 같았다. 코비드 ..

문학 2020.12.19

가을 선물

동네 한 바퀴 걸을 때마다 길에 떨어진 단풍잎을 집어 든다. 녹색이었던 잎이 빨갛게 혹은 노랗게 물든 잎을 보면 너무 예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색깔이 곱고 아름다운 잎을 줍는 날은 보석을 주운 것처럼 기분이 좋다. 다칠세라 조심스럽게 들고 와서 책상머리 벽에 붙여놓았다. 붙여놓으면 시들 때까지 한참 간다. 어떤 때는 2~3주도 간다. 나는 이런저런 단풍잎을 보면서 방에서도 가을을 즐긴다. 그냥 걸어갔다가 오는 것 보다 그나마 고운 단풍잎이라도 떨어진 게 있는지 살펴보며 걸으면 걷기가 한결 수월하다. 단풍잎을 주워들면서 알게 된 건데 단풍잎이라고 해서 다 집어 들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중에서도 고운 색깔과 온전한 모양을 갖춘 단풍잎이라야 집어 들게 된다. 집어 든 다음에도 살펴본다. 간직할만한 건지..

문학 2020.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