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경기는 실전을 실시간에 보아야 실감이 난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경기장에 들어가는 이유도 다 그래서이고,
입장료가 좌석 위치에 따라서 다른 이유도 다 그래서이다.
코앞에서 선수들이 뛰는 걸 보면 호흡을 같이하는 것처럼 현장감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스포츠 경기는 내 편이 있어야 재미있고 애간장이 탄다.
거기에다가 내 편이 이기기라도 한다면 흥분하고 신이 난다.
더군다나 국가 간의 경기라면 이거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하는 경기가 되고 만다.
총만 안 들었지 전쟁과 다를 바 없다.
내가 도쿄 올림픽을 보러 한국에 들어간다고 했더니 친구가 피식 웃는다.
미국에서도 얼마든지 중계방송으로 보여주는데 구태여 비싼 비행기 요금을 지불하면서까지
한국에 가서 보아야 하느냐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올림픽 경기를 한국에서 보고 싶다.
사실은 도쿄에 가서 직접 올림픽 경기를 관람해야 할 나이이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해서
내 나라 한국에서나마 TV로 시청한다는 게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게임이지만 나는 한 번도 한국 선수들이 뛰는 경기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올림픽 TV 중계라는 것이 IOC에서 관장하는 게 돼서 비싼 중계료를 지불해야 한다.
중계료 때문만이 아니라 자국민이 뛰는 경기가 아니면 흥미 있어 하지 않기 때문에
각 나라는 제각기 자기 나라 선수들이 뛰는 경기만 골라서 중계방송한다.
한국에서는 한국 선수들의 경기만 골라서 보여주고, 미국에서는 미국 선수들의 경기만
보여준다.
나도 올림픽 경기 생중계방송을 지겹도록 보기는 했어도 그것은 모두 미국 선수들이
금메달 따내는 경기만 보았다.
이번에는 벼르고 한국에 들어와 한국 선수들이 뛰는 경기를 실컷 본다.
당장 지난 올림픽 때 극적으로 승리한 게임을 다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동했다.
9년 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축구가 일본을 2:0으로 대파하고 올림픽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동메달 따는 경기를 다시 보여줘서 통쾌한 마음으로 시청했다.
뉴스를 통해서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경기를 보기는 처음이었다.
한국은 영원한 내 편이니까, 내 편이 뛰는 걸 보는 건 정말 실감 나고 흥분된다.
내가 직접 뛰는 것 같은 심정이고 안타깝기도 하다.
나이가 들다 보면 호기심은 줄어들고, 재미있는 일도 적어지고, 흥밋거리도 많지 않다.
감동할 만한 게 별로 없다. 음악을 들어도, 책을 읽어도, 영화를 봐도 예전 같지 않고
곧 권태롭게 느껴지기 마련인데, 스포츠 경기는 그렇지 않다.
더군다나 국가 간의 경기라면 이거야말로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게임이 돼서 선수는
죽기 살기로 뛰고 응원하는 국민도 선수와 같은 심정이다.
한국 여자 배구가 일본과의 경기에서 마지막 5세트에서 역전승을 거두는 순간의
감동이라든가,
여자 배구가 터키를 이기고 4강에 진출하던 짜릿한 과정이야말로 일부러 이렇게 만들려고
해도 되지 않는 감명 깊은 순간이다.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야구 경기에서 6회 말 2아웃에 벌어진 대역전 드라마는 어떻고?
안산(20·광주여대)이 2020 도쿄올림픽 전 종목을 통틀어 첫 3관왕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야말로
사람 애간장을 태우고도 남았다.
안산은 일본 도쿄의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옐레나 오시포바(러시아올림픽위원회)를 슛오프 끝에 6-5로 꺾고 우승했다.
이번 대회 혼성 단체전과 여자 단체전에서 이미 금메달을 획득한 안산은 이번 대회에서만
세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대회 전 종목을 통틀어 금메달 3개를 따낸 선수는 안산이 처음이다.
양궁만이 아니라 펜싱, 수영, 체조 이런 경기에서 느끼는 짜릿한 순간을 어디서 맛보겠는가?
이면에는 실망도 많다. 그러나 실망도 희망이 있었으니 실망이지 노인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면 희망이 어디 있으면 실망은 또 어디 있겠는가.
노인의 심장을 뛰게 하는 스포츠 경기야말로 놓쳐서는 안 될 장면이고 순간이다.
다음 올림픽에도 한국에 들어와서 경기를 보고 말 테다.
노년에 이런 즐거움을 어디서 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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