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발소 삼색등

샌프란시스코 메아리 2021. 8. 11. 08:51

 

운동길에 내가 늘 다니던 동궁 목욕탕 앞을 지나는데 이발소 삼색등이 뱅글뱅글 돌고 있다.

돌아도 팔랑개비 돌 듯 빨리 돈다.

원래 이발소 삼색등은 점잖게 천천히 돌아가는 건데, 갑자기 팔랑개비처럼 도는 삼색등을

보니 방정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이발하러 빨리 들어와 달라는 재촉 신호처럼 보였다.

 

동궁 목욕탕 젊은 이발사가 머리를 잘 깎는데, 전에는 내가 단골로 다녔는데,

하는 생각이 난다. 지금은 목욕탕에 못 가니까 이발사 본 지도 오래됐다.

젊은 이발사가 기능대회에서 상까지 받은 믿을만한 실력자인데 지난 수년 동안 수난을

겪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해에는 목욕탕이 수리한답시고 실히 6, 7개월 문을 닫는 바람에

젊은 이발사는 영업을 못 하고 재개업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서 목욕탕이 새롭게 문을 열었나 했더니 곧바로 코로나가 발생하는 바람에

다시 문을 닫아야 했다. 문 닫은 긴 세월 동안 뭘 먹고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없다.

 

설혹 지금 다시 문을 열어서 영업은 한다 해도 누가 목욕탕에 들어오겠는가?

젊은 이발사의 수입이 전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동궁 목욕탕 이발소 삼색등이 팔랑개비처럼 빨리 돌아가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요새는 남자들도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깎는다.

미용실에서 더 잘 깎는 것도 아니고 더 싸게 받는 것도 아닌데도 그리로들 간다.

나는 남자 이발사들이 손님이 없어서 노는 걸 보면 딱해 보인다.

떼돈을 벌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노동이나 해서 먹고살겠다는 건데 그것마저 보장이

어렵다는 것은 석양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머리는 깎아야 하는 건데 왜 이리됐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목욕탕 이발소라는 곳이 조금 이상해서 이발할 손님들이 모두 벌거벗었다.

남들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벌거벗고 이발 의자에 앉아 있는 게 조금 생소하다.

생소하기만 한 게 아니라 난처한 생각도 든다.

목욕탕에 들어가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이발하는 동안은 속옷 정도는 입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누가 시작한 문화인지 모두 벗고 행동한다.

우리 눈에는 이상할 게 없지만, 외국인 눈에는 생소하게 보일 것이다.

 

동궁 목욕탕 앞을 지날 때면 빨리 돌아가는 삼색등을 보면서 이발사가 떠오른다.

알지도 못하고 이름도 모르지만 젊은 사람이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는데도

시대가 받아주지 않는 것 같다.

운은 노력하는 자에게만 오는 거지만, 노력도 운이 따라야 꽃을 피운다.

젊은이에게도 꽃피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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