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길에 내가 늘 다니던 동궁 목욕탕 앞을 지나는데 이발소 삼색등이 뱅글뱅글 돌고 있다.
돌아도 팔랑개비 돌 듯 빨리 돈다.
원래 이발소 삼색등은 점잖게 천천히 돌아가는 건데, 갑자기 팔랑개비처럼 도는 삼색등을
보니 방정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이발하러 빨리 들어와 달라는 재촉 신호처럼 보였다.
동궁 목욕탕 젊은 이발사가 머리를 잘 깎는데, 전에는 내가 단골로 다녔는데,
하는 생각이 난다. 지금은 목욕탕에 못 가니까 이발사 본 지도 오래됐다.
젊은 이발사가 기능대회에서 상까지 받은 믿을만한 실력자인데 지난 수년 동안 수난을
겪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해에는 목욕탕이 수리한답시고 실히 6, 7개월 문을 닫는 바람에
젊은 이발사는 영업을 못 하고 재개업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서 목욕탕이 새롭게 문을 열었나 했더니 곧바로 코로나가 발생하는 바람에
다시 문을 닫아야 했다. 문 닫은 긴 세월 동안 뭘 먹고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없다.
설혹 지금 다시 문을 열어서 영업은 한다 해도 누가 목욕탕에 들어오겠는가?
젊은 이발사의 수입이 전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동궁 목욕탕 이발소 삼색등이 팔랑개비처럼 빨리 돌아가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요새는 남자들도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깎는다.
미용실에서 더 잘 깎는 것도 아니고 더 싸게 받는 것도 아닌데도 그리로들 간다.
나는 남자 이발사들이 손님이 없어서 노는 걸 보면 딱해 보인다.
떼돈을 벌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노동이나 해서 먹고살겠다는 건데 그것마저 보장이
어렵다는 것은 석양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머리는 깎아야 하는 건데 왜 이리됐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목욕탕 이발소라는 곳이 조금 이상해서 이발할 손님들이 모두 벌거벗었다.
남들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벌거벗고 이발 의자에 앉아 있는 게 조금 생소하다.
생소하기만 한 게 아니라 난처한 생각도 든다.
목욕탕에 들어가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이발하는 동안은 속옷 정도는 입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누가 시작한 문화인지 모두 벗고 행동한다.
우리 눈에는 이상할 게 없지만, 외국인 눈에는 생소하게 보일 것이다.
동궁 목욕탕 앞을 지날 때면 빨리 돌아가는 삼색등을 보면서 이발사가 떠오른다.
알지도 못하고 이름도 모르지만 젊은 사람이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는데도
시대가 받아주지 않는 것 같다.
운은 노력하는 자에게만 오는 거지만, 노력도 운이 따라야 꽃을 피운다.
젊은이에게도 꽃피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로나 시대에 목욕탕 풍경 (0) | 2021.08.16 |
---|---|
풀꽃이 잠시도 못 참고 콕 꼬꾸라지더먼. (0) | 2021.08.13 |
2020 올림픽 골프 (0) | 2021.08.08 |
영원한 나의 편 오림픽 한국 팀 (0) | 2021.08.06 |
마스크 인생 (0) | 2021.08.04 |